인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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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동(譚嗣同, 탄스통, 1865~1898)이라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담사동.jpg

☞ 이미지출처: baidu.com

☞ 담사동 지음, 임형석 옮김, <<인학>>, 산지니, 2016

○ 중국 호남성 유양(瀏陽) 출신
중국 유양(瀏陽) 위치
조선의 불꽃놀이
○ 담사동의 자(字)는 복생(復生)임
○ 아버지 담계순은 중앙정부에서 벼슬을 했음
○ 12살이 되던 1876년 북경에 디프테리아가 돌았는데 어머니, 형, 누나가 목숨을 잃었음. 담사동도 지독한 돌림병에 걸렸지만 사흘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음. 복생(다시 복復, 태어날 생生)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사건 때문임
○ 10대 초반부터 같은 고향 출신인 스승 구양중곡에게서 유교경전을 배웠고, 그의 스승 구양중곡이 존경한 왕부지를 사숙하게 됨. 왕부지(1619~1692)는 민족의식이 높았던 학자로 담사동 역시 민족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음
○ 당시 협객으로 유명했던 왕오에게 칼 쓰기를 배우기도 했음
○ 아버지가 관직을 하면서 감숙이나 신강 등 서북 지역부터 강남 곳곳과 대만까지 중국 각지에서 벼슬한 덕분에 아바지를 따라다니면서 실감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됨. 29살 되던 해인 1893년에는 북경과 상해를 여행하고 서양의 과학, 문화, 사회에 관한 번역서들을 읽을 기회가 생겼음
○ 그가 30살이 되던 해인 1894년에 청일전쟁이 터지고 다음해 1895년에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게 됨. 패전국 청나라에 일본이 강요한 여러가지 불평등한 조항들이 당시 지식인 사회를 들끓게 함. 담사동도 다른 이들처럼 격분하지만 패전과 불평등조약의 원인을 생각하고 청나라에 더 이상 희망을 걸지 않게 됨
○ 이전에 2번이나 과거시험을 치렀다 떨어졌지만 더 이상 과거 시험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 호남성에서 친구 당재상(唐才常)이나 스승 구양중곡 등과 함께 민중과 정부가 함께하는 신정운동(정치개헉 운동)에 참여하게 됨. 과학과 기업 창업을 목표로 하는 신식학교를 만들기 위한 준비단계로 신학사를 만들었음. 광산 개발 계획, 성냥 공장 창업 등에 관여함
○ 32살이 되던 1896년 당시 호북성의 순무(최고 지방관)로 취임한 아버지를 거들어 물난리를 당한 이재민 구제에 매달렸음
○ 상해, 천진, 북경 등을 여행하는 중에 1896년에 북경에서 양계초를 만나 강유위의 변법운동을 알게 되고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됨
○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1897년 남경에서 <<인학>>을 쓰게 됨
○ 담사동은 <<인학>>을 탈고하고 고향에 돌아가 신정운동에 다시 합류함. 남학회를 운영하면서 대중 계몽을 위한 강연회를 개최하고 잡지 <<상보>>를 출판하는 활동을 했음. 남학회는 실제 정치 조직이었음. 담사동은 당시 비밀결사인 가로회와 연락하면서 가로회가 혁명을 위한 무장 세력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했으며 왕조 체제를 전복시킬 때 남학회를 의회로 발전시킬 작정이었음
○ 1898년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한 변법유신운동, 곧 무술변법이 백 일 남짓 진행되다가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광서제를 유폐시키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실패가 가까워짐
○ 파국이 코앞에 닥치자 강유위 등은 외국 공사관 등에 피신했다가 결국 망명하지만 담사동은 절망하지 않고 천진에 주둔해 있던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무력으로 응원해줄 것을 교섭함. 시국을 저울질하던 원세개는 결국 변법운동을 배신하고 서태후 편에 서서 관련자를 체포하는데 담사동은 동지 다섯 명과 함께 북경 선무문 바깥에서 처형당함


<<인학>>이라는 책[편집 | 원본 편집]

  • 인학(仁學)의 의미

○ 중국에서 '인'은 사회성으로 이해해야 함. '인'이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평등을 실현하고 생명을 살리는 길이 '인'의 본뜻이라고 보았음
○ 담사동은 '인'의 정당성을 새로운 '학', 곧 서양에서 유래한 과학에서 찾고자 했음


  • <<인학>>의 주요 개념들

인: 유통-생명의 본질

- 담사동이 말하는 '인': "통한다는 것이 인의 가장 중요한 뜻이다. 에테르라든지 전기라든지 정신 에너지 같은 것은 통하게 만드는 도구를 가리킨다."
- 인간의 사회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 개념은 공자가 말한 것임. 중국 의학에서 신체의 기운이 잘 통하고 있는 상태를 '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음. 송나라 때에는 '인'을 생명, 생명의 본질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음
- 담사동은 이러한 인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수용하고 발전시켜서 '인'을 에테르, 전기, 정신 에너지 등으로 보았음


에테르

- 담사동은 에테르를 세계에 충만한 물질로 보았음
- 담사동은 단과 지구,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지만 서로 끌어당겨 흩어지지 않알 수 있는 건 에테르덕분이라고 보았음
- 담사동은 왕부지의 기학에 영향을 받았음. 담사동이 말하는 에테르는 인이나 영혼처럼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몸, 감각기관, 사회, 우주까지 물질적인 데도 두루 나타나는 것임. 담사동은 에테르의 본질을 소통이라고 파악했음. 그리고 이것이 '인'이라는 동일시까지 나아갔음. 이러한 담사동의 견해는 중국 전통의 기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그런데 왜 인을 전기, 에테르 등으로 설명하려고 했을까?


  • 중국 근현대 사상의 특징: 철학의 과학화

☞ 한성구, <담사동 <<인학>>의 과학적 기초>, <<중국학논총>> 64, 한국중국문화학회, 183~203쪽

○ 중국 근현대 철학자들은 앞다투어 과학을 받아들였으며 과학을 활용해 철학을 개조하려고 했음
○ 담사동 또한 서양 학문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던 시대에 과학으로 유학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음
○ 서구와 서구 학문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의 침략 앞에서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19세기 말을 살았던 지식인들의 생각이었음
○ 담사동이 서양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사례
- 1896년 담사동은 북쪽 지방으로 학술 여행을 떠났을 때 상해에 있는 존 프라이어의 집에서 보았던 X-ray 사진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음

 사진 한 장을 보았는데, 전기를 이용한 신법으로 찍은 것이다. 사람의 간담肝膽, 폐장肺腸, 근락筋絡, 골혈骨血 등을 유리를 통하거나 구멍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양을 종이에 옮길 수도 있다. 또한 두꺼운 나무판이나 얇은 금속 등을 사람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도 마치 막혀있지 않은 듯하다.
-<<담사동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