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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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라는 인물[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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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위키백과(일본)


  • 주돈이(周敦頤, 1017~1073)

○ 주렴계(周濂溪)라고도 함. 염계는 그의 호임. 그의 고향에 염계라는 개천이 있었는데 만년에 주돈이는 여산에 살면서 근처에 있던 작은 개천을 염계로 이름지었고 개천가에 서재를 지어 염계서당으로 불렀음
○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외가 집에서 양육되었음
○ 사법부의 일을 담당했을 때 법에 따라서만 일을 처리했고 권세를 좇아 법을 어그러뜨리는 일에 반대했음
○ 오랫동안 미천한 관리를 지냈지만 이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초연하고 여유롭게 처세했음
○ 인격이 높아 당시 사람들을 감화시켰음
○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사유가 주돈이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해지곤 함


  • 주돈이의 시, 애련설(愛蓮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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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애련설(愛蓮說)]
물과 땅에서 나는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했으나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 잔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으되 밖은 곧아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나는 말하겠다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요 연은 꽃 중의 군자라고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적이 드물고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 사람인고 모란에 대한 사랑은 많을 것이 당연하리라


주돈이의 <<통서(通書)>>[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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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돈이 지음, 주희 주석, 권정안·김상래 역주, 청계, 2000, 15~34쪽

○ 주돈이의 <<통서>>를 일관하고 있는 문제는 '학문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의 실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하고 강인한 추구라고 할 수 있음
○ <<통서해>>는 주돈이가 지은 <<통서>>에 주희가 해설을 붙인 것임. 그래서 <<통서해>>임
○ 사회정치적 공리(功利: 공명과 이익)를 목표로 하지 않고 도(道)를 궁구하는 데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인간성의 완성을 지향하는 학문 태도는 주돈이에게서 시작하여 송나라 성리학을 일관하는 학문적 경향성이라고 할 수 있음
=> 주돈이의 인품에 대해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주돈이의 욕심이 없고 담백한 성격과 고결한 품격에 대해 "가슴속이 깨끗하고 시원하여 비가 갠 다음에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같다."라고 했음
○ 이러한 주돈이의 태도는 그가 30세 때 만나서 가르친 정이천, 정명도 형제에게 계승되고 다시 주자에게 전승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