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겸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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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괘(謙卦) 효사와 「상전」[편집 | 원본 편집]

 初六(초육)은 謙謙君子(겸겸군자)니 用涉大川(용섭대천)이라도 吉(길)하니라.
 초육(初六)은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큰 내를 건너는데 이용하더라도 길할 것이다.
 象曰(상왈) 謙謙君子(겸겸군자)는 卑以自牧也(비이자목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낮춤으로 자신을 다스려나가는  것이다.”


  • 겸겸군자(謙謙君子):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

○ 겸괘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겸손함 가운데에서도 겸손한 사람임. “겸손하고 겸손함”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군자뿐임(왕필). 초육효는 겸괘의 가장 아랫자리에 있으면서도 유순한 성질을 지닌 음효임. 따라서 매우 겸손하고 자신을 매우 낮출 수 있는 상황임


  • 용섭대천길(用涉大川吉): 큰 내를 건너는데 이용하더라도 길할 것임

○ 여기에서 큰 내를 건넘은 어려운 상황을 건너하는 것을 의미함. 이러한 겸손한 태도로 어려운 상황을 조심스럽게 건너갈 수 있으면 길하다고 할 수 있음


  • 비이자목야(卑以自牧也): 낮춤으로 자신을 다스림

○ 여기에서 ‘목(牧)’을 왕필은 기른다는 의미로 보았음(牧, 養也). 정이는 ‘자목(自牧)’을 자처한다는 의미로 보았음(自牧, 自處也). 기본적으로 낮추어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수양해나가며 그러한 자세로 살아가려고 한다는 지향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六二(육이)는 鳴謙(명겸)이니 貞(정)하고 吉(길)하니라.
 육이(六二)는 겸손함이 (밖으로) 울리는 것이니, 바르고 길하다.
 象曰(상왈) 鳴謙貞吉(명겸정길)은 中心得也(중심득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겸손함이 울려나오니 바르고 길하다’라는 것은 진심으로 얻은 것이다.”


  • 명겸정길(鳴謙貞吉): 겸손함이 (밖으로) 울리는 것이니, 바르고 길함

○ 육이효는 유순한 자질을 가지고 중(中)의 자리에 위치해 있음. 이 중(中)의 자리에 있음을 「상전」에서는 마음 한가운데, 진심, 중심으로 풀이하기도 했음. 또한 이효로 음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정(正)을 얻은 상황임
○ 겸손한 덕이 마음 한 가운데 진정성 있게 꽉 차 있기 때문에 음성과 얼굴빛으로 자연히 나타난 것임. 그래서 겸손함이 울려 나온다라는 마음 속 겸손함이 밖으로 표출된 것으로 표현되고 있음
○ 육이효의 겸손한 덕은 마음속에 진정성이 쌓여나감으로 인해 음성으로도 저절로 표출되는 것으로 이는 마음 한 가운데, 중심에서 자득한 것이고 그렇게 하려고 애써서 힘쓴 것이 아님(정이)


 九三(구삼)은 勞謙(노겸)이니 君子有終(군자유종)이니 吉(길)하니라. 
 구삼(九三)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함이니, 군자는 끝마침이 있으니 길하다.
 象曰(상왈) 勞謙君子(노겸군자)는 萬民(만민)이 服也(복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는 만민이 복종한다.”


  • 노겸(勞謙) 군자유종길(君子有終吉):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함

○ 구삼효는 간괘의 하괘의 윗자리에 자리하고 있음. 혼자 양이면서 양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정(正)을 얻었음
○ 위로는 군주에게 신임을 받고 있고 아래로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추종되는 사람으로 공로가 있는데도 겸손한 덕을 갖춘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음. 그래서 공로가 있는데도 겸손하다는 의미로 “노겸(勞謙)”을 풀이할 수 있음(정이)
○ 구삼효는 정(正)을 얻었기 때문에 바름을 지켜갈 수 있는 상황임. 그래서 끝까지 겸손함을 지켜가서 좋은 끝맺음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될 수 있음


  • 노겸군자(勞謙君子) 만민복야(萬民服也)

○ 위아래의 음들로 만민이 모두 와서 구삼효의 양효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공영달)
○ 「계사전」에서는 공자의 말을 빌어 구삼 효사의 의미에 대해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어도 자신의 덕택으로 여기지 않음은 후덕함이 지극하니 그 공을 가지고도 남에게 낮추는 사람을 말함. 덕으로 보자면 성대하다고 할 수 있고 예(禮)로 보자면 공손하다고 할 수 있으니 겸(謙)이란 것은 공손함을 지극히해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라고 했음
○ 겸손함, 겸허함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의 믿음과 마음을 얻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


 六四(육사)는 无不利撝謙(무불리휘겸)이니라.
 육사(六四)는 겸손함을 베풂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상왈) 无不利撝謙(무불리휘겸)은 不違則也(불위칙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겸손함을 베풂에 이롭지 않음이 없음’은 법칙을 어기지 않음이다.”


  • 무불리휘겸(无不利撝謙): 겸손함을 베풂에 이롭지 않음이 없음

○ 육사는 육오효의 군주의 자리와 가까우면서 음유한 자질로 겸손하게 따를 수 있는 사람임
○ 휘(撝): 베풀고 펴는 상(象)이라고 보았다(施布之象) (정이)
○ 『설문해자』 단옥재 주에서는 『주역』 겸괘의 “휘겸(撝謙)”을 언급하면서 겸손함을 넓게 흩뜨리는 의미로 가는 곳마다 겸손함을 쓰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했음(按撝謙者, 溥散其謙, 無所往而不用謙). 즉 찢어서 여기저기 흩뿌리듯이 어딜가든 겸손함을 베푸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 것임
○ 육사는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구삼 위에 있으면서 군주의 자리인 오효 아래에 있고, 유순한 자질을 가지고 음으로 음의 자리에 있어 정(正)을 얻은 경우로 주변을 모두 살피면서 겸손한 덕을 잘 발휘할 수 있으면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음


  • 불위칙야(不違則也): 법칙을 어기지 않음

○ 육사의 자리 자체가 위아래를 모두 살펴보아야 하는 상황이며, 조심스럽게 모든 행동을 하면서도 겸손함으로 모든 관계, 일을 대해야 하는 상황으로, 법칙을 어기지 않는 자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음


 六五(육오)는 不富以其隣(불부이기린)이니 利用侵伐(이용침벌)이니 无不利(무불리)하리라. 
 육오(六五)는 부유하지 않으면서도 이웃과 함께 하니, 침범하여 정벌함이 이로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象曰(상왈) 利用侵伐(이용침벌)은 征不服也(정불복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침범하여 정벌함이 이로움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는 것이다.”


  • 불부이기린(不富以其隣): 부유하지 않으면서도 이웃과 함께 함

○ 오효는 겸괘의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음유한 자질을 가진 사람임. 따라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유순하게 아랫사람을 대할 수 있는 사람임. 그래서 부유하게 하지 않아도 그 이웃과 함께 할 수 있음. 육오효는 겸손함과 유순함을 베풀 수 있는 군주로 민중들이 자연스레 마음으로 그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고 그 사람을 잘 따르게 됨


  • 이용침벌(利用侵伐) 무불리(无不利): 침범하여 정벌함이 이로움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는 것임

○ 한 조직의 리더로서 유순하고 겸손하기만 해서는 안됨. 때로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음. 정이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군주의 도는 겸손하고 유순함만을 숭상해서는 안 되며 위무(威武)로 구제해 준 뒤에야 세상 사람들을 마음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고 그래서 침범하고 정벌해도 이롭다고 한 것이라고 보았음
○ 주희는 예악 등의 은덕을 베푸는 교화방식과 겸손함으로 복종시킬 수 없는 사람을 정벌하는 것으로, 이들에게 위엄과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을 평안하게 다스릴 수가 없다고 보았음
○ 한 조직을 책임지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겸손함과 위엄 혹은 세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그의 중도(中道)이자 의무라는 점을 살펴볼 수 있음


 上六(상육)은 鳴謙(명겸)이니 利用行師(이용행사)하여 征邑國(정읍국)이니라.
 상육(上六)은 겸손함이 울리는 것이니, 군대를 출동하여 읍국(邑國)을 정벌하는 정도로 하는 것이 이롭다.
 象曰(상왈) 鳴謙(명겸)은 志未得也(지미득야)니 可用行師(가용행사)하여 征邑國也(정읍국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겸손함이 울림’은 뜻을 얻지 못함이니, 군대를 출동하여 읍국(邑國)을 정벌해야 한다.”


  • 명겸이용행사정읍국(鳴謙利用行師征邑國): 겸손함이 울리는 것이니, 군대를 출동하여 읍국(邑國)을 정벌하는 정도로 하는 것이 이로움

○ 상육효는 겸괘의 가장 마지막 자리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유순한 자질을 가지고 음의 자리에 놓여 있어서 너무 겸손하고 너무 유순한 사람임
○ 기본적으로 상효는 중을 넘어 다소 지나친 상황임. 게다가 상효의 자리는 높긴 하지만 실질적인 지위가 없는 자리임
○ 정병석은 상육의 “명겸”은 육이의 “명겸”과 달리 실권이 없으면서 지나치게 겸손하여 뜻을 얻지 못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너무 나약한데다 군주와 같은 힘과 지위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겸손의 덕만 있고 힘이나 권력은 부족한 상황으로, 큰 군대를 동원하여 정복활동은 할 수 없고 자신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데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았음


  • 명겸지미득야(鳴謙志未得也): ‘겸손함이 울림’은 뜻을 얻지 못함

○ 자신의 뜻을 얻지 못해 그 간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우는 데 이른 상황임.(정이)
○ 겸괘의 끝에 있어서 겸손함이 극에 달했는데 상효의 자리에 있으면서 지나친 겸손함이 오히려 문제가 되면서도 실질적인 지위가 없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으로 우는 상황이지만 강하고 굳센 마음으로 자신의 그 사사로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면서 수양의 의미로 풀이하기도 함

=> 겸손도 때와 자리에 맞는 적절함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