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둔괘, 위기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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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주역을 쓰는 사람이라면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건괘와 곤괘 다음에 어떤 괘를 놓으시겠어요?

건곤다음.jpg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다음에 나오는 둔괘(屯卦)[편집 | 원본 편집]

  • '둔괘(屯卦)'를 '준괘'로 읽기도 함


둔괘 괘상[편집 | 원본 편집]

둔괘 괘상.png


  • 참고: 8괘의 상징

주역 8괘 상징추가.png

  • 둔괘는 하늘과 땅이 처음 만나 요란하게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붓는 모습임
  • 이를 『주역』에서 “양과 음이 처음 만나 어려움이 생겨났다”라고 말하기도 했음. 하지만 이 처음의 어려움은 생명력을 틔워내는 힘이 됨


둔괘의 괘 이름의 뜻[편집 | 원본 편집]

둔 글자.png

그림 출처: 한전(漢典)

1. 둔의 첫 번재 의미: 어려움

  • 최초의 글자풀이책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둔(屯)의 의미를 “초목이 처음 나와서 어려운 상황을 본뜬 것이다. 屮이 一을 뚫은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一은 땅이다. 끝이 굽어 있는 것이다. 『주역』에 ‘강(剛)과 유(柔)가 처음 교제해서 어려움이 생겼다.’라고 했다.(屯, 難也. 象艸木之初生, 屯然而難. 从屮貫一. 一, 地也. 尾曲. 󰡔易󰡕 曰 ‘屯, 剛柔始交而難生.’)”라고 했음. 여기에서 屯자에 대해 초목이 땅을 뚫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설명하고 있음. 새싹이 땅 속에서 땅을 뚫고 나오듯이 처음 나오는 모습이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땅을 뚫고 나오느라 똑바로 나오지 못하고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나오는 상황을 형상화한 글자로 보고 있음
  • 둔괘에서의 둔(屯)자의 의미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 땅을 뜻하는 곤괘가 이제 둔괘에서 서로 만나 새로운 생명현상, 새로운 일이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새싹이 막 땅을 뚫고 나오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듯이 어려움이 생겨나게 된 것임
  • 하늘과 땅의 양극성 속에서 둔괘의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천지간(天地間)에 무한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변화무쌍한 삶이 나타나게 됨

2. 둔의 두 번째 의미: 가득함

  • 『주역』 괘의 순서를 논리적이고 정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서괘전(序卦傳)」에 따르면, “천지가 있게 된 후에 만물이 생겨난다. 천지사이에 가득 찬 것은 만물이기 때문에 둔괘로 건‧곤괘 다음을 이어받았다. 둔이라는 것은 가득참이다. 둔이라는 것은 만물이 처음 생겨남이다(有天地, 然後萬物生焉. 盈天地之間者唯萬物, 故受之以屯. 屯者, 盈也. 屯者, 物之始生也).”라고 했음
  • 여기에서 둔괘가 지닌 가득참의 의미는 이제 막 생겨난 만물들로 천지사이가 가득찬다는 것을 의미


둔괘 읽기[편집 | 원본 편집]

시작하는 어려움의 때에 가져야 할 기본 기조는 무엇일까요?

둔괘 괘사[편집 | 원본 편집]

 屯(둔)은 元亨(원형)하고 利貞(이정)하니 勿用有攸往(물용유유왕)이요 利建侯(이건후)하니라.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갈 바를 두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 원형리정(元亨利貞)

○ 건괘 괘사의 원형리정과 둔괘 괘사의 원형리정과의 차이에 대해 공영달(『주역정의(周易正義)』)은 건괘의 4덕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는데 둔괘 괘사의 원형리정의 경우 원형리정을 위한 일정한 조건이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건괘와 다르다고 보았음
동양고전종합DB 『주역정의(周易正義)』번역문
○ 즉 음양이 처음 교제해서 어려움이 만들어졌고 어려움으로 인해서 사물이 비로소 크게 형통하게 되기 때문에 “원형(元亨)”이라고 한 것이라고 보았음. 또한 만물이 크게 형통하면 이익을 얻어서 바르게 되기 때문에 “이정(利貞)”이라고 보았음
○ 건괘 괘사에는 원형리정만 있는데 반해 둔괘 괘사에는 “갈 바를 두지 말아야 하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라는 일정한 이로움의 조건과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건괘와 다르다고 보았음
○ 이처럼 둔괘의 원형리정은 형이상적이고 고원한 원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보다는 천지 사이, 천지간(天地間)에서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때에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일정한 조건과 한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원형리정에 관한 현장적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참고: 『주역정의(周易正義)』주석서의 기초가 되는 왕필, 공영달은 누구인가?

왕필(王弼, 226~249) - 위나라 시대에 요절한 천재로 알려진 철학자. 열 살 때부터 『도덕경』을 읽었고 열여섯에 노자주를 내었으며 스물세 살에 죽기까지 논어와 『주역』까지 풀이했음. 특히 『주역』을 의리역적으로 해석한 역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임
- 왕필은 『주역』이 정치 철학을 강론한 책이라고 보았음. 한나라 상수학과 미신을 배척하고 도가적 사유에 근거하여 역을 해석하는 새로운 풍조를 열었음 - 득의망상(得意忘象): 『역』을 논할 때 ‘의(意)’를 얻는 일이 가장 중요함. 의(意)를 얻음은 상(象)을 잊음에 있음
“올무는 토끼를 잡는 것이 목적이므로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잊어버리고,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므로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음과 같다. 그러한즉 언어란 상(象)의 올무이고 상(象)이란 의(意)의 통발이다. 그러므로 언어에 집착하면 상(象)을 얻지 못하고, 상에 집착하면 의를 얻지 못한다.“ –왕필의 『장자』 「외물」편 해석


주역 해석의 두 가지 갈래 = ☞ 廖名春‧康學偉‧梁韋弦 지음, 심경호 옮김, 『주역철학사』, 예문서원, 2009, 163~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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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이유: 이미 주역 안에 이 두 가지 모두가 있음. 상(象)과 숫자로 미래를 예측하는 주역의 과학, 이것을 철학적인 원리로 이해하는 주역의 인문학


공영달(孔穎達: 574~648)
- 당나라 유학자. 자(字)는 중달(仲達)임
- 당나라 태종의 명으로 오경을 정리했음. 당시 태종은 유교의 성대함을 과시하고 여러 유교학설을 통일하겠다는 생각에서 유학자들을 동원하여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5경을 정리하게 함
- 공영달은 『주역』을 정리한 『주역정의(周易正義)』를 정리하면서 왕필, 한강백 주를 채택함


  • 물용유유왕(勿用有攸往) 이건후(利建侯)

○ 『주역』 괘사에서는 어떤 것을 추진하거나 진척하는 것을 비유할 때 “갈 바를 두다(有攸往)”이라고 표현하곤 함
○ 둔괘는 험난함에 처해 있고 세상 일이 형통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때를 상징함. 공영달은 험난한 시대에 세상의 도가 처음 열려서 만물이 아직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제후를 세움이 이로워서 만물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사의 의미로 풀이했음
○ 둔괘의 때는 험난한 시대를 상징하며 섣불리 혼자 시대를 구제하기 위해 나서기 보다는 현명한 조력자와 함께 해야 함을 의미하는 구절로 이해할 수 있음


둔괘 「단전」[편집 | 원본 편집]

 彖曰(단왈) 屯(둔)은 剛柔始交而難生(강유시교이난생)하며 動乎險中(동호험중)하니 大亨貞(대형정)이니라.
 「단전(彖傳)」에 말했다. “둔은 강과 유가 처음 교제하여 어려움이 생겼으며 험한 가운데에서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다.
왜 험한 가운데 움직임인다고 할까요? 드디어 8괘에 기반한 해석의 묘미가 시작됩니다!
  • 動乎險中(동호험중): 팔괘의 상징에 따르면 둔괘의 상괘인 감괘는 험함, 하괘인 진괘는 움직임을 상징함

둔괘 단전+괘상.png


  • 고대인의 눈으로 보는 우레

○ 우레는 고대로부터 하늘과 땅, 인간과 신과 교합하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임. 그 한 예로 한고조 유방의 모친인 유온(劉媼)의 이야기를 들 수 있음
○ 『논형』 「뇌허(雷虛)」에 “우레와 번개가 치는 날에는 하늘이 꽉 막히게 된다.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모친인 유온(劉媼)이 큰 못가 방죽에서 쉬다가 꿈에 신(神)과 교합했는데, 바로 이 때 우레와 번개가 치면서 어두컴컴해졌다.”라고 했음. 여기에서 우레와 번개 치는 날은 하늘이 꽉 막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유온의 사례를 들어 천신(天神)과 땅위의 인간이 교합하는 사례를 언급했음
○ 마찬가지로 둔괘에서 언급되고 있는 우레 또한 하늘과 땅이 비로소 만나 교제하는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음

여전히 신비로운 기상현상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역』속 자연은 일상을 신비의 공간으로 만드는 자연의 신비를 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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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雷雨之動(뇌우지동)이 滿盈(영만)하여 天造草昧(천조초매)에는 宜建侯(의건후)요 而不寧(이불녕)이니라.
 우레와 비의 움직임이 가득하여 천지의 조화가 시작되는 때에 어지럽고 어두울 때에는 제후를 세워야 하고 안일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天造草昧(천조초매)

○ 둔괘는 천지의 조화(造化)가 시작되는 때로, 만물을 만드는 처음에는 어두운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초매”라고 한 것임. 여기에서 “초매(草昧)”는 어지럽고 어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지의 조화가 시작되는 처음에는 어지럽고 어두운 데에서 시작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음 (왕필)


  • 참고: 제강(帝江) 창세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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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출처: 한국일보

○ 중국 창세 신화 중 하나에서, 혼돈을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체로 표현함
○ 제강(帝江)은 눈, 코, 귀, 입 등 얼굴이 하나도 없는 새로, 혼돈 속의 어두운 상황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답답한 모양임
○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숙과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홀이 가끔 혼돈이 사는 곳에 놀러갔는데 그 때마다 혼돈이 손님 대접을 잘해서 혼돈에게 7개의 구멍을 뚫어줌. 그런데 이 혼돈은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게 됨

둔괘 「상전」[편집 | 원본 편집]

 象曰(상왈) 雲雷屯(운뢰둔)이니 君子以(군자이)하여 經綸(경륜)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를 이를 본받아 경륜한다.”
  • 운뢰둔(雲雷屯): 여기에서 운(雲)은 상괘의 감괘의 상징임. 8괘의 감괘는 물을 상징하지만 상괘의 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구름의 상으로 읽혀진 것임

둔괘 상전+괘상.png


  • 경륜(經綸): ‘경(經)’자에 대해 『설문해자』에 실을 짜는 것(織也. 从糸巠聲)이라고 보았고 ‘륜(綸)’자에 대해 “청색 실을 꼬아서 끈을 만드는 것(靑絲綬也)”이라고 보았음. 글자적 의미는 실을 삼는다는 것이지만 세상을 통치하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음


둔괘 효사, 「상전」 [편집 | 원본 편집]

 初九(초구)는 磐桓(반환)이니 利居貞(이거정)하며 利建侯(이건후)하니라.
 초구는 머뭇거림이니 바름에 거함이 이로우며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象曰(상왈) 雖磐桓(수반환)하나 志行正也(지행정야)며 以貴下賤(이귀하천)하니 大得民也(대득민야)로다.
 「상전(象傳)」에 말했다. “비록 머뭇거리지만 뜻은 정도(正道)를 행하려고 하며 존귀한 사람으로 천한 이에게 낮추니 민심을 크게 얻을 것이다.” 
  • 반환(磐桓)

○ 어려움이 시작되는 둔괘의 초기에 처해 있어서 움직이게 되면 어려움이 생겨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임. 초효가 속한 하괘는 진괘로 움직이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둔괘의 전체적인 상황이 어려운 상황이고 초효가 속한 자리는 어려움이 시작되는 자리와 때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


  • 이거정(利居貞)

○ 초구효는 양의 자리에 양효가 와 있기 때문에 정(正)임. 그래서 초구 「상전」에서는 초구 효사의 바름에 거한다는 의미를 정도를 행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보았음. 초구효가 함부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구차하게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바름을 지켜 행하는 데 뜻을 두고 있기 때문임 (공영달)
○ 초구효는 주저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바름을 지키고 행할 수 있는 상황임

둔괘 정+부정.png


  • 이귀하천(以貴下賤)

○ 『역전』에서 양은 귀함 & 군주, 음은 천함 & 백성으로 풀이되기도 함. 초구의 양이 세 음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귀함으로 천한 이들에게 낮추는 상황으로 보기도 함(공영달)
○ 또는 군주가 백성들에게 낮추기 때문에 민심을 얻게 되는 상황으로 풀이하기도 함(고형)


○ 고형(1900~1986)은 현대 고문자 학자이자 고대 문화사가임. 청화(淸華)대학 연구원을 졸업하고, 무한대학, 산동대학 등 여러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음. 경학, 사학과 금석, 갑골문자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경』, 『상서』, 『주역』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음
○ 고형은 『주역』의 괘명, 괘사, 효사 및 점법을 고증하면서 팔괘는 원시 사회 시기에 출현한 것이며, 64괘는 늦어도 은대에 출현한 것이라고 여겼음. 서주 초기에 그 이전 시대부터 내려온 점법 혹은 점책을 바탕으로 쓴 책이 『주역』이며, 동주에 이르러 이 『주역』을 해설하여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변화를 상징한 것이 『역전』이라고 보았음. 역학 저서에는 『주역고경통설周易古經通說』, 『주역고경금주』(1940), 『주역잡론周易雜論』(1962), 『주역대전금주』(1970)가 있음


 六二(육이)는 屯如邅如(둔여전여)하며 乘馬班如(승마반여)하니 匪寇(비구)면 婚媾(혼구)리니 女子貞(여자정)하여 不字(부자)라가 十年(십년)에야 乃字(내자)로다.
 육이는 어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타고 빙빙 돌며 배회하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상대인 것이니 여자가 올바름을 지켜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에 이르러 이내 생육할 것이다.
 象曰(상왈) 六二之難(육이지난)은 乘剛也(승강야)요 十年乃字(십년내자)는 反常也(반상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육이의 어려움은 강을 타고 있기 때문이고 10년이 되어서야 생육함은 상도(常道)로 돌아옴이다.”


  • 전여(邅如)

『설문해자』 단옥재 주에서는 마융(馬融)의 말을 인용하여 ‘전(邅)’자를 “어렵게 가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難行不進之皃)”이라고 풀이했음. 어기사인 여(如)자가 덧붙어서 ‘전여(邅如)’는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음


  • 반여(班如)

○ ‘반(班)’은 빙빙 돌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임 (공영달) 어기사 여(如)자가 붙어 말에 올라탔지만 빙빙 배회하고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임
○ 육이는 구오효와 정응(正應)관계임. 육오에게 나아가려고 하지만 어려운 때라서 아직 어려운 상황임. 그래서 빙빙 돌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임

둔괘 응+불응.png

=> 『주역』의 괘는 초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상효가 각각 짝을 이룸. 음양이 만나는 경우를 서로 상응한다는 의미에서 응(應) 또는 정응(正應)이라고 하고, 음이 음과 만나고 양이 양을 만나는 경우를 서로 상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응(不應)이라고 함. 우리 일상에서 인간관계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주역』에서도 역시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 서로 다른 음과 양이 만나면 길로 향해 가는 경우가 많고, 서로 같은 음기리, 양끼리 만나면 흉으로 향해 가는 경우가 많음


  • 비구(匪寇)

○ ‘비(匪)’는 ‘아니다’라는 뜻, ‘구(寇)’는 도적이라는 뜻임. 공영달은 여기에서 도적을 초구효로 보았음


  • 혼구(婚媾)

○ 혼인상대로 육이효에게 혼인상대는 정응관계에 놓여 있는 구오효임
○ 꼭 혼인상대만이 아니라 만나야 할 짝, 파트너, 상하관계 등을 의미할 수 있음
○ 육이의 짝은 저 멀리 오효의 자리에 있지만 당장 초효에 가까운 양이 있음. 육이는 유순한 사람인데 자칫 아래에 있는 초효의 양효에게 침범당할 수 있음. 하지만 육이효는 중정(中正)하므로 바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임. 바름을 굳게 지키면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후, 이를 기다린 후에에 구오효를 만나 생육이라고 표현되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음

  • 십년(十年)

○ 십년은 오랜 시간을 말함. 한 국면이 변화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꽉 찬 시간을 의미하는 것임


  • 자(字)

○ 생육한다. 아이를 낳는다는 뜻
○ 『주역』은 상징으로 가득찬 텍스트인 만큼 아이를 낳는다는 뜻 또한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 있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것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풀어서 이해해야 함

  • 승강(乘剛)

○ 여기에서 강은 양으로 초구효를 가리킴. 육이효가 음효로 양효인 초구효 위에 있기 때문에 ‘승(乘)’자를 썼음. 음이 양효 위에 있을 때에는 양을 타고 있다는 의미에서 ‘승(乘)’이라고 하고, 양이 음효 위에 있을 때에는 순리대로 받든다는 의미에서 ‘승(承)’이라고 함

둔괘 승.png

=> 승(乘): 서로 이웃하는 두 효에서 음효가 양효의 위에 있는 것을 말함
=> 승(承): 서로 이웃하는 두 효에서 음효가 양효의 아래에 있는 것을 말함


 六三(육삼)은 卽鹿无虞(즉록무우)라 惟入于林中(유입우림중)이니 君子幾(군자기)하여 不如舍(불여사)니 往(왕)하면 吝(인)하리라.
 육삼은 사슴을 쫓되 우인(虞人) 없이 숲속으로만 들어가고 있으니 군자가 기미를 알아 놓아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니 계속 나아가면 수치스러운 일이 닥칠 것이다.
 象曰(상왈) 卽鹿无虞(즉록무우)는 以從禽也(이종금야)요 君子舍之(군자사지)는 往(왕)하면 吝窮也(인궁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사슴을 쫓되 우인이 없다는 것은 눈앞의 짐승만 보고 따라감이요 군자는 그것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계속 가게 되면 수치스러움을 당하는 곤궁한 상황이 될 것임을 말한다.


  • 즉(卽): 나아감, 쫓아감


  • 우(虞): 관직명으로 귀족을 위해 조수(鳥獸)를 관장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임. 귀족들이 사냥나갈 때 그들을 위해 새와 짐승을 몰아주는 역할을 했음


  • 즉록무우(卽鹿无虞)

○ 삼효가 이미 오효와 가까이에 있어서 도적을 만나는 어려움이 없고 자신의 길을 방훼하지 않아서 나아가고 주저함이 없을 수 있는 상황임. 길의 평이함만을 보고 그 상대의 뜻을 헤아리지 않는 상황으로 오효의 응함은 이효에 있기에 삼효가 가도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안내자 없이 짐승을 잡으러 가는 꼴이라고 볼 수 있음(왕필)


  • 길흉회린의 차이

길흉회린.png

회(悔: 뉘우침): 마음 심(心)자가 들어감. 잘못을 범한 후에 마음에 걱정이 생겨서 잘못을 보충하여 선(善)으로 향하려는 생각이 있음
린(吝: 인색함, 부끄러움): 입 구(口)자가 들어감. 잘못을 범한 후에 잘못을 보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실하게 실천하지 않고 다만 입으로만 말하는 것


 六四(육사)는 乘馬班如(승마반여)니 求婚媾(구혼구)하여 往(왕)하면 吉(길)하여 无不利(무불리)하리라.
 육사는 말을 타고 빙빙 돌면 배회함이니 혼인상대를 구하여 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象曰(상왈) 求而往(구이왕)은 明也(명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구하여 감은 현명함이다.”


  • 구혼구(求婚媾) 왕길(往吉)

○ 육사는 초구와 정응(正應)의 관계에 놓여있음. 앞서 육이효는 초구효와 가까워서 초구효가 침범하려고 할 수 있지만 이효가 올바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중에 육사효가 응의 관계에 있는 초구효에게 나아가도 초구효와 만날 수 있는 길함이 있음


  • 승마반여(乘馬班如)

○ 육사의 음효가 초구의 양효의 응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음으로 양을 타고 있는 상황이라서 “승마(乘馬)”라고 했음
○ 육이효가 자신의 길을 방해할까 염려하여 처음에는 빙빙 돌며 배회하지만 이효가 초효를 쫓아가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육사효가 자신의 짝인 초구효를 좇아갈 수 있는 상황임. 자신의 혼인상대인 초구효와 혼인관계를 맺을 수 있어 이롭지 않음이 없는 상황임(공영달)


  • 명(明)

○ 초효와 이효의 실정과 상황을 명확히 알고 초효가 자기를 받아들여 줄 것을 알고 이효가 자기의 뜻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현명하다고 한 것임(공영달)


 九五(구오)는 屯其膏(둔기고)니 小貞(소정)이면 吉(길)하고 大貞(대정)이면 凶(흉)하리라.
 구오는 혜택을 두루 베풀기 어려우니 조금씩 바로잡아나가면 길하고 크게 바로잡으려고 하면 흉하다.
 象曰(상왈) 屯其膏(둔기고)는 施未光也(시미광야)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혜택을 두루 베풀이 어려움은 시혜의 효과가 아직 빛을 발할 수 없음이다.”


  • 둔기고(屯其膏)

○ ‘고(膏)’는 『시경』에 “어둑어둑 비가 내려 땅을 적신다(陰雨膏之)”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말한 적신다, 윤택하게 한다는 ‘윤(潤)’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구오효는 존귀한 자리에 위치해 있지만 전체적으로 둔괘의 어려운 때에 처해있기 때문에 그 은택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미칠 수는 없음. 또한 이효의 자리에 있는 응의 관계에 매여 있어서 그 혜택을 두루 베풀기가 어려워 그 은택의 베풀어짐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


  • 둔괘의 때의 적절한 대처방안은 갑작스럽게 크게 그 어려움을 바로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조금씩 해나가야 함. 이처럼 『주역』의 길흉은 그 때에 대한 성찰, 그 방식에 대한 성찰에 달려있으며, 항상 상황성을 고려하는 인간의 실제 삶의 현장에 기반해야 함을 알 수 있음


 上六(상육)은 乘馬班如(승마반여)하여 泣血漣如(읍혈연여)로다.
 상육은 말을 타고 빙빙 돌며 배회하여 피눈물을 줄줄 흘린다.
 象曰(상왈) 泣血漣如(읍혈연여)니 何可長也(하가장야)리오? 
 「상전(象傳)」에 말했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니 어찌 그 상황 또한 오래가겠는가?”


  • 읍혈(泣血): 피눈물을 흘림


  • 연여(漣如): ‘연(漣)’은 연이어져 있는 것으로 ‘연여'는 줄줄 흐르는 상태를 묘사한 것임


  • 상육은 음유한 자질을 가지고 어려움을 상징하는 둔괘의 마지막 자리에 위치하고 있음. 험함의 극한에 놓여 있으면서 응의 관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음.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움직이면 갈 곳이 없어서 말을 타고 가려고 하다가도 배회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임


  • 주역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는 물극필반(物極必反)임. 어떤 것이든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됨. 둔괘 상육의 피눈물 흘리는 상황 또한 오래가지 않음. 『주역』에서는 오히려 눈물을 흘린 후에 상황이 더 좋은 방향으로 역전되는 사례들이 나타남. 피눈물 흘리듯이 후회할 수 있으면 그 상황 또한 오래가지 않고 변화될 수 있음


둔괘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지혜는 무엇인가요?


  •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때론 겪어내야 할 위기가 있음. 둔괘의 상황 또한 상황적으로 무언가 시작되고 하는 등의 상황에서 기인하는 요소도 있음. 주저하고 머뭇거리며 조심하게 행동하면서 위기의 국면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음
○ 둔괘 육이효의 경우처럼 위기 국면이라고 해서 이를 빨리 벗어나고자 아무나 함께 해서는 안됨. 이럴 때일 수록 자신의 짝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함
○ 이러한 때에 안일한 마음으로 경거망동하는 것은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임. 당장 길이 열려있는 것 같아도 조심해야 함 피눈물을 흘리는 위기의 극한에 이른 상황이라도 오히려 그런 극에 달한 상황이 이제 변화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임. 그 상황 또한 반전되어 변화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