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자 정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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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 시대배경, 황로사상[편집 | 원본 편집]
☞ 이석명, <<회남자: 한대 지식의 집대성>>, 사계절, 2004
☞ 유안 편찬, 이준영 해역, <<회남자>>, 자유문고, 2015
☞ 펑유란 지음, 정인재 옮김, <<간명한 중국철학사>>, 마루비, 2020
한나라 학문적 특징[편집 | 원본 편집]
- 한나라 초기 지식인들은 공통적으로 진왕조가 단명한 원인에 대해 일정한 교훈을 얻었음
예) 육가(陸賈): “진나라가 안정을 바라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실패한 것은 포악한 이들을 등용하고 형벌이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한고조(漢高祖): 백성들이 진의 가혹한 법에 시달린 지 오래되었으므로, 자신은 살인(殺人), 상인(傷人), 도적 등에 관한 3장을 제외한 나머지 진나라 법은 모두 폐기할 것을 약속함
⟹ 공통적으로 진나라의 멸망 원인을 가혹한 법치로 귀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진의 멸망과 함께 한이 진 대신 천하를 통일하자, 진나라 때의 법가의 반동으로 무위자연 사상이 팽배해지고, 조정에서도 전쟁에 지친 민중과 호흡을 함께 하려는 황로(黃老) 사상이 세력을 점유하게 되었음
- 유가·도가·법가·음양가 통합의 움직임
① 유가, 도가, 법가, 음양가는 진한시대에 새로운 의식형태를 구축하는 4대 사조였음
② 특히 유가사상이 점차 다른 세 학파의 사상을 융합함으로써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했고, 점차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으로 자리잡았음
③ 『여씨춘추(呂氏春秋)』: 자각적으로 제자백가의 사상을 종합함으로써 사상적 통일을 구하려고 함
“많은 사람들의 상이한 의견을 들어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의 위태함은 금세 닥쳐온다.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노담(老聃, 노자)은 부드러움[柔]을 귀하게 여겼고,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겼으며, 묵적(墨翟, 묵자)은 겸애(兼愛)를 귀하게 여겼다. … 군중에 종과 북이 있는 것은 군사들의 귀를 하나로 하기 위한 것이다. 통일된 법령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하기 위한 것이다. … 하나가 되면 다스려지고, 달라지면 어그러진다. 하나가 되면 안정을 이룰 수 있고, 달라지면 위태로워진다.”(『여씨춘추』, 「不二」) “천하에 반드시 천자가 있는 것은 천하를 하나로 하기 위한 것이다. 천자가 반드시 하나를 견지하는 것은 천하를 단결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가 되면 다스려지고, 둘이 되면 어지러워진다.”(『여씨춘추』, 「執一」)
⟹ 제자백가의 논의를 통합하여 사상적 통일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요구함. 사상통일의 필요성은 통일의 정치적 요구에서 나온 것임
<참고: 제자백가> 전국시대에 출현한 사상가들의 총칭. 전국시대는 여러 나라로 나뉘어 끊임없이 병합 전쟁을 벌이던 시기였음. 이에 전국시대 각국의 군주들은 자국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출신이나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구하였음.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주장을 피력하는 사상가들이 탄생했음 그 중 음양가는 천체를 관측하여 우주 운행의 법칙을 알아낸다거나, 달력을 제정하고 미래를 점을 치는 등의 천문, 역법, 술수 등을 연구. 음양가의 사상 및 음양오행의 사상은 한대의 유교와 도교에 흡수되면서 새롭게 전개됨. 고대의 과학사상
- 한초의 통치자들은 백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무위’의 정책을 채택해야 했으며, 그에 따라 당시 사상계는 도가적 색채를 띠게 되었음
- 예를 들어 육가(陸賈)는 ‘인의’나 ‘교화’, 심지어 ‘예를 제정하고 음악을 만드는 일’ 등 명백하게 유가적인 시책을 이야기했으나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도가의 ‘무위’ 이론과 합치시키려고 했음
- 도가의 자연-정치이론, 이른바 ‘무위’가 이 시기에 새롭고 실제적인 함의를 가진 이론을 통해 해설되었으며, 당시의 실제적인 정치경제적 조치를 통해 실현된 사상이었음. 따라서 도가의 우주관은 현실적인 정치경제적 기반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철학적으로 ‘인간(정치, 사회)’을 ‘천(자연, 우주)’과 연결·융합시켜 통일제국의 상부구조를 위한 이론체계를 마련함으로써 원시도가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가지게 됨
- 객관적 자연법칙의 준수라는 경향(도가와 음양가가 중시한 것)과 주관능동성의 발휘라는 경향(유가, 법가가 중시한 것)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한대사상이 처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였음.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천문과 역법의 규칙을 이야기한 음양가와 자연법칙의 준수를 강조한 도가가 사회의 정치체계를 구축하는 외재적 골격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그리고 그 외재적 골격 속에서 인위와 입세간의 태도를 중시하는 유학을 강조하게 됨
황로사상과 <<회남자>>[편집 | 원본 편집]
- 황로사상의 특징은 도가 사상을 중심으로 유가, 법가, 음양가 등 여러 사상을 종합했다는 데 있음
- 도가는 도를 중심 원리로 한 형이상학적 바탕을 제공하고 뭇 사상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통일성'의 근거로 자리함
- <<회남자>>는 바로 이러한 황로학적 분위기 속에서 쓰여졌음
- 황로: 황제(黃帝)+노자. 황제에게서 기원하여 노자에게 집대성되었다고 여기는 사상
- 고대 신화에 따르면 황제(黃帝)는 의술과 침구술을 개발했다고 알려져왔음
- <<황제내경>>의 주인공은 황제(黃帝)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의학서로 알려져 있음. 여기에는 자연에 순응하는 양생의 지혜를 소개하고 있음
- 황로사상은 기존의 법가가 통치를 위해 법치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 비해 개인의 건강과 행복, 즉 양생을 함께 추구한 사상임
- 황로사상은 한나라 때 정치철학으로 기능하게 됨. 도가철학의 무위(無爲)를 통치자의 통치술 차원에서 제시했음. 황로 저작인 <<여씨춘추>>에서는 "도가 있는 바른 군주는 (객관적 상황에) 따를 뿐 작위를 행하지 않고, 문책을 할 뿐 일일이 시키지 않으며, (주관적) 상념과 의도를 버리고 고요함과 텅 비움으로써 기다린다"라고 하여 군주의 무위적 통치 자세를 주장했음
- 한편 군주가 무위해야 하는 근거를 원시 도가와 마찬가지로 천지자연에서 찾았음. 인간세의 이상적 통치자는 자연 질서를 본받아야 하며 자연 질서의 방식은 바로 무위라는 것임
-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 사람들이 유위[有爲, 자연법칙과 어긋나는 인위적인 작위를 말함]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외형상 유위를 배척하는 태도를 보임
- 하지만 황로학의 무위는 인간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유위의 요소도 아우름
"내가 말하는 무위는 사사로운 뜻이 공적인 길에 끼어들지 않고 개인적 욕망으로 인해 올바른 통치 방법이 왜곡되지 않으며 이치에 따라 일을 실행하고 객관적 바탕에 따라서 공로와 업적을 세운다." <<회남자>>
=> 여기에서 보이는 무위는 일을 실행한다, 공로와 업적을 세운다와 같이 개인의 능동적인 행위를 포괄하는 것임
- 한나라 초기에 황로학이 정치철학으로서 역할을 했지만 한무제(B.C.134년 즉위) 이후 유교사상이 동중서의 건의에 따라 국교가 되었음
- 하지만 황로학은 양생술[자연에서 부여받은 개인의 생명을 온전히 보전하는 법]로 개인들에게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으며 통치자들 또한 표면적으로는 유교 정치를 표방했지만 내적으로 개인의 양생에 관심이 많았음
<<회남자>> <주술훈(主術訓)>[편집 | 원본 편집]
군주의 정치술이란 무위(無爲)의 일에 처해[자연 그대로의 일에 맡기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명령)을 행한다. 맑고 고요한 상태로 활동하지 않고 법도를 한결같이 시행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옛 관례에 따라 아래에 맡기고 성과만을 취하고 (스스로를) 수고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은 때에 맞게 하고, 활동하고 정지하는 것은 이치를 따르며,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따라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 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린다. 정치가 까다로우면 백성들은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호랑이와 표범과 물소와 코끼리를 기르는 자는 우리를 만들어 짐승들이 즐기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고 짐승들이 배고픈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짐승들이 성내는 것을 멀리한다. 그러나 짐승들이 목숨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는 것은 몸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위에서 거짓이 많아지게 되면 아래에도 거짓이 많아지게 된다. 위에서 일을 많이 하면 아래에서 닮는 것이 많아진다. 위에서 번거롭고 요란스러우면 아래에서는 안정되지 못한다. 위에서 구하는 것이 많게 되면 아래에서는 서로 다투게 된다. ... 성인(聖人)은 일을 덜어서 쉽게 다스리고 구하는 것을 적게 해서 공급을 쉽게 했다. 베풀지 않아도 인(仁)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되고 구하지 않아도 얻으며 일하지 않아도 이루어졌다.
-<<회남자>> <주술훈>
<<회남자>> 속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편집 | 원본 편집]
눈비가 내리고 서리와 이슬이 내려 만물을 살리고 죽이고 하지만, 하늘은 거기에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지만 하늘은 오히려 받들어진다. 문서와 법에 따라 관리와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유사(有司: 실무자)이며 군주는 거기에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다.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지만 군주는 오히려 받들어진다.
-<<회남자>> <전언훈>
명철한 군주의 정치는 나라에 처벌을 받는 이가 있어도 군주는 화내지 않고, 조정에서 상을 받는 자가 있어도 군주는 간여함이 없다. 처벌받는 자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당연하게 여긴다. 상을 받는 자도 윗사람의 덕택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공로만으로 이룬 것으로 여긴다. 백성들이 처벌이나 상이 돌아오는 것이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과에 힘쓰고 일을 잘 받아나간다. 이 때문에 조정은 잡초가 무성해져 발자취가 없지만 논과 밭은 잘 개간되어 풀이 없는 것이다. ... 군주는 고요하고 조용하여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관리들이 제 직분을 잘 닦아나갈 수 있게 된다. 비유하자면 군대에서 지휘권을 가진 사람이 자기 멋대로 지시를 내리면 군대가 어지러워지는 것과 같다. ... 군자가 정치를 하는 것은 심신을 청정하고 밝게 하며 마음을 텅 비우고 뜻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회남자>> <주술훈>
- 통치자의 기본 자질: 고요함, 비움, 공평무사. 공정성과 객관성. 무위의 중요한 자질
- 통치자의 사사로운 감정의 위험성
군주가 어진 것만 좋아하면 공이 없는 자가 상을 받고 죄 있는 자가 풀려나게 되며, 형벌만 좋아하면 공 있는 자가 벌을 받고 죄 없는 자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회남자>> <전언훈>
<<회남자>> 속 통치자의 통치술 1[편집 | 원본 편집]
성인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에 근거해서 선을 권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에 근거해서 간사함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상주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군주를 칭찬하고 한 사람을 벌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군주를 두려워하게 된다.
-<<회남자>> <범론훈>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의 본성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성으로 지니고 있는 것[본성]에 근거해서 그것을 계발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공은] '근거하면' 크게 되고 의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면 작게 된다.
-<<회남자>> <태족훈>
군주가 백성에게서 세금을 거둘 때는 반드시 그 해의 수확량을 먼저 계산하고 백성의 축적량을 헤아리며 기근과 부족 여부를 파악한다. 그런 후에 수레와 옷과 음식을 취하여 군주 자신의 욕구를 채운다.
-<<회남자>> <주술훈>
=> 백성의 본성, 욕구, 성향에 대한 정확한 파악
<<회남자>> 속 통치자의 통치술 2[편집 | 원본 편집]
군주의 도는 원과 같으니 빙빙 돌아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백성을 변화시키고 육성함은 마치 신명과 같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음에 머물고 객관적 상황에 따르며, 항상 뒤에 설 뿐 앞서지 않는다. 신하의 도는 네모와 같으니 논하는 것이 올바르고 처하는 바가 합당하며 일을 행할 때는 앞서서 제창하고 직분을 분명히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공을 세우고 완성한다. 그러므로 군주와 신하가 도를 달리하면 다스려지고 같이 하면 어지러워진다. 각각 그 마땅함을 얻고 그 합당함에 처하면 위와 아래가 서로 부릴 수 있게 된다.
-<<회남자>> <주술훈>
현명한 군주가 사람을 쓰는 것은 뛰어난 목수가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다. 큰 것은 선박이나 대들보로 쓰고, 작은 것은 노나 문설주로 쓰며, 긴 것은 서까래로 쓰고, 짧은 것은 대들보 위의 짧은 기둥이나 두공으로 쓴다. 이렇게 하면 크고 작음 또는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각각 그 마땅한 바를 얻게 되며, 곡자(컴버스)나 직각자 할 것 없이 모두 그 마땅한 바에 쓰이게 된다.
-<<회남자>> <주술훈>
군주는 궁궐 깊숙이 거처함으로써 더위와 습기를 피하고, 침전의 입구를 이중, 삼중으로 막음으로써 간사한 자들을 피하며, 가까이로는 고을의 사정도 알지 못하고 멀리로는 산과 연못의 형체도 알지 못하며, 눈으로는 장막 밖 십 리 앞도 내다볼 수 없고 귀로는 백 걸음 밖도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군주가 천하의 사물에 대해 통달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은 군주에게 정보를 실어다 주는 자가 많고 천하의 실정을 헤아려 주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천도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다.
-<<회남자>> <주술훈>
=> 도가 무위 정치의 이상인 "다스림이 없어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 인재 등용
<<회남자>> 속 통치자의 통치술 3[편집 | 원본 편집]
인간의 재능은 전적으로 믿고 쓸 수 없지만, 제도 장치는 대대로 전해질 수 있다.
-<<회남자>> <무칭훈>
법률과 제도는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근원이다. 이를 놓아 버리고 쓰지 않는다면 이는 마치 고삐 없이 말을 모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신하와 백성이 오히려 군주를 농락하게 될 것이다.
-<<회남자>> <주술훈>
저울은 왼쪽과 오른쪽에 대해 사사로이 가볍거나 무겁지 않으니, 이 때문에 무게를 다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먹줄은 안과 밖에 대해 사사로이 굽거나 곧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사물을 바로잡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군주는 법을 사용함에 있어 사사로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법을 통해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다.
-<<회남자>> <주술훈>
-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닌 법을 무위정치와 연결시키고자 했음. 법과 같은 제도 장치를 활용함으로써 도가의 이상인 무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음
지금 저 저울추와 저울대, 그리고 곡자와 직각자가 한번 정해지면 진나라나 초나라에서도 그 기준이 변하지 않는다. ... 그것들은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전해지며, 그 운용은 무위적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에는 망하는 군주가 있더라도 세상에는 도가 사라지는 경우가 없으며, 사람 가운데는 곤궁한 자가 있을지라도 이치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로써 볼 때 무위는 도의 근본이다.
-<<회남자>> <주술훈>
오늘의 토론 주제(2022.11.8)[편집 | 원본 편집]
☞ 회남자 통치술이 오늘날 리더십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회남자 정치술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토론 내용(2022.11.15)[편집 | 원본 편집]
- 회남자의 통치술로서의 무위는 완전한 무위가 아닌 유위와 무위 사이임. 리더의 역할은 백성들이 잘 할 수 있게 토대만 닦아 도와주는 것임
- 유가는 사람들의 행위에 제한을 걸었지만 도가의 무위, 회남자의 통치술은 그저 그 기반을 닦는 방법만 제시함. 백성들이 수동적으로 따르는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게 해야 함
-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여전히 유용한 통치술임
- 하지만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데 만약 원하지 않지만 잘하는 일을 한다고 하여 원하지 않는 자리에 있는 개인은 불행할 것임
- 회남자를 현대 정치에 적용한다면 군주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음. 자연의 이치에 맞춰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경제 이론 중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연히 흘러가지만 중요한 컨트롤 타워가 없다면 독점과 같은 문제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
- 사람이 생각보다 이기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있음
- 사람을 통찰려 있게 파악하고 그것을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
- 회남자가 법률과 제도를 중요하게 말하는데 법률과 제도를 말할 때 통일된 기준이 있어야 함
- 남는 질문: 악법에 대해서 통치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악법에 대해서도 무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