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디지털 인문융합: 맹자의 딜레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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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의 딜레마''' = | = '''맹자의 딜레마''' = | ||
− |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1(주석서, 한글번역문): [http://db.cyberseodang.or.kr/front/main/main.do 동양고전종합DB] | + |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1(주석서, 한글번역문): [http://db.cyberseodang.or.kr/front/main/main.do 동양고전종합DB]</br> |
− |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2(원문 DB): [https://ctext.org/ Chinese Text Project] | + |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2(원문 DB): [https://ctext.org/ Chinese Text Project]</br> |
☞ <span style="color:#ff0000;">'''하지만 기본적으로 전공생의 미덕은: 당장은 DB로 보더라도 논문을 쓸 때에는 원문 책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span> | ☞ <span style="color:#ff0000;">'''하지만 기본적으로 전공생의 미덕은: 당장은 DB로 보더라도 논문을 쓸 때에는 원문 책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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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ff0000;">★ 참고: 우선 DB에 탑재된 것으로 맥락을 파악하되 논문을 쓸 때에는 본인이 직접 번역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원문 한자가 맞는지도 꼭 책을 찾아서 확인해야 합니다. DB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고,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span></br> | <span style="color:#ff0000;">★ 참고: 우선 DB에 탑재된 것으로 맥락을 파악하되 논문을 쓸 때에는 본인이 직접 번역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원문 한자가 맞는지도 꼭 책을 찾아서 확인해야 합니다. DB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고,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span></br> | ||
− | 1.『맹자』, 「양혜왕 하(梁惠王 下)」 | + | ※ 『맹자』 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중요도순X)</br> |
− | 맹자의 제자로서 노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악정자(樂正子)가 들어가 평공을 뵙고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평공이 말하였다. “혹자가 과인에게 말하기를 ‘맹자의 어머니 상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가서 만나보지 않았소.” “무슨 말씀입니까? 임금께서 이른바 더 성대하였다는 것은 아버지 상은 사(士)의 예(禮)로써 하고 어머니 상은 대부(大夫)의 예로써 하였으며, 아버지 상에는 삼정(三鼎)을 쓰고 어머니 상에는 오정(五鼎)을 쓴 것을 말합니까?” “아니오. 내관(內棺)과 외관(外棺), 수의(壽衣)와 이불을 아름답게 한 것을 말하오.” “이것은 이른바 더 성대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니,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와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 빈부(貧富)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 | |
+ | '''1.『맹자』, 「양혜왕 하(梁惠王 下)」'''</br> | ||
+ | 노(魯)나라 평공(平公)이 외출하려고 하는데, 임금이 총애하는 장창(臧倉)이라는 자가 여쭈었다. “전에는 임금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담당관리에게 갈 곳을 하명하셨는데, 지금은 수레가 이미 출발 채비를 마쳤는데도 담당관리가 갈 곳을 알지 못하니, 어디를 가시려는 것인지 감히 여쭙습니다.” 그러자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고 하오.” “어째서입니까? 한 나라의 군주인 임금께서 몸을 낮추시어 필부(匹夫)에게 먼저 예(禮)를 베푸시는 까닭은 그가 현명하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禮義)는 현명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맹자의 어머니 상(喪)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으니, 맹자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만나보지 마십시오.” “알겠소.” | ||
+ | 맹자의 제자로서 노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악정자(樂正子)가 들어가 평공을 뵙고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평공이 말하였다. “혹자가 과인에게 말하기를 ‘맹자의 어머니 상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가서 만나보지 않았소.” “무슨 말씀입니까? 임금께서 이른바 더 성대하였다는 것은 아버지 상은 사(士)의 예(禮)로써 하고 어머니 상은 대부(大夫)의 예로써 하였으며, 아버지 상에는 삼정(三鼎)을 쓰고 어머니 상에는 오정(五鼎)을 쓴 것을 말합니까?” “아니오. 내관(內棺)과 외관(外棺), 수의(壽衣)와 이불을 아름답게 한 것을 말하오.” “이것은 이른바 더 성대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니,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와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 빈부(貧富)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br> | ||
+ | 魯平公將出。嬖人臧倉者請曰:「他日君出,則必命有司所之。今乘輿已駕矣,有司未知所之。敢請。」公曰:「將見孟子。」曰:「何哉?君所為輕身以先於匹夫者,以為賢乎?禮義由賢者出。而孟子之後喪踰前喪。君無見焉!」公曰:「諾。」 | ||
+ | 樂正子入見,曰:「君奚為不見孟軻也?」曰:「或告寡人曰,『孟子之後喪踰前喪』,是以不往見也。」曰:「何哉君所謂踰者?前以士,後以大夫;前以三鼎,而後以五鼎與?」曰:「否。謂棺槨衣衾之美也。」曰:「非所謂踰也,貧富不同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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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br> | ||
+ |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은 말을 잘하였고, 염우(冉牛)‧민자(閔子)‧안연(顔淵)은 덕행(德行)을 잘 말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 두 가지를 겸하셨으되, ‘나는 사명(辭命)에 있어서는 능하지 못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잘 아시는데다 호연지기를 길러서 덕행에도 뛰어나시니,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 | ||
+ | “아, 이 무슨 말인가? 옛날에 자공이 공자께 여쭙기를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십니다.’ 하자, 공자께서 ‘성인의 일은 내 능하지 못하지만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이네.’ 하시니, 자공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지혜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은 인(仁)입니다. 인하고 또 지혜로우시니 선생님은 이미 성인이십니다.’ 하였네. 성인은 공자께서도 자처(自處)하지 않으셨는데, 이 무슨 말인가?” | ||
+ | “전에 제가 들으니, ‘자하(子夏)‧자유(子游)‧자장(子張)은 모두 성인의 한 부분만 갖추고 있었고, 염우‧민자‧안연은 전체를 갖추고는 있으나 미약하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중 어느 쪽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감히 선생님께서 자처하시는 바를 여쭙겠습니다.” | ||
+ | “이 문제는 잠시 놓아두세.” | ||
+ |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어떻습니까?” “백이와 이윤은 도(道)가 같지 않았네. 섬길 만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섬기지 않고,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워지면 물러간 것은 백이이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 것은 이윤이며,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난 것은 공자이시니, 이분들은 모두 옛 성인이시네. 나는 아직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일세.” | ||
+ | “백이와 이윤이 그처럼 공자와 동등(同等)합니까?” “아닐세.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네.” | ||
+ | “그렇다면 세 분이 같은 점이 있습니까?” “있지. 백 리 되는 땅을 얻어서 임금 노릇을 한다면 모두 제후들에게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일세. 그러나 한 가지의 의롭지 않은 일을 하거나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하시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같은 점이네.” | ||
+ | “감히 그 다른 점을 여쭙겠습니다.” “재아(宰我)‧자공(子貢)‧유약(有若)은 지혜가 충분히 성인을 알아볼 수 있었으니, 이들의 지혜가 낮다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네. | ||
+ | 재아는 ‘내가 선생님을 관찰하건대 요순(堯舜)보다 월등히 낫다.’ 하였네. | ||
+ | 자공은 ‘예(禮)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 그 왕의 덕(德)을 알 수 있으니, 백세(百世)의 뒤에서 백세의 왕들을 등급 매겨보아도 군주 중에 이 기준을 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 하였네. | ||
+ | 유약은 ‘어찌 단지 사람만 그러하겠는가? 달리는 짐승 중에 기린(麒麟), 나는 새 중에 봉황(鳳凰), 언덕 중에 태산(泰山), 도랑 중에 하해(河海)가 같은 종류이고, 백성 중에 성인의 위치도 이와 같다. 같은 종류 중에서 빼어나고 같은 무리 중에서 빼어났으나,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보다 더 훌륭한 분은 계시지 않다.’ 하였네.”</br> | ||
+ | 「宰我、子貢善為說辭,冉牛、閔子、顏淵善言德行。孔子兼之,曰:『我於辭命則不能也。』然則夫子既聖矣乎?」 | ||
+ | 曰:「惡!是何言也?昔者子貢、問於孔子曰:『夫子聖矣乎?』孔子曰:『聖則吾不能,我學不厭而教不倦也。』子貢曰:『學不厭,智也;教不倦,仁也。仁且智,夫子既聖矣!』夫聖,孔子不居,是何言也?」 | ||
+ | 「昔者竊聞之: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冉牛、閔子、顏淵則具體而微。敢問所安。」 | ||
+ | 曰:「姑舍是。」 | ||
+ | 曰:「伯夷、伊尹何如?」 | ||
+ | 曰:「不同道。非其君不事,非其民不使;治則進,亂則退,伯夷也。何事非君,何使非民;治亦進,亂亦進,伊尹也。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孔子也。皆古聖人也,吾未能有行焉;乃所願,則學孔子也。」 | ||
+ | 「伯夷、伊尹於孔子,若是班乎?」 | ||
+ | 曰:「否。自有生民以來,未有孔子也。」 | ||
+ | 曰:「然則有同與?」 | ||
+ | 曰:「有。得百里之地而君之,皆能以朝諸侯有天下。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皆不為也。是則同。」 | ||
+ | 曰:「敢問其所以異?」 | ||
+ | 曰:「宰我、子貢、有若智足以知聖人。汙,不至阿其所好。宰我曰:『以予觀於夫子,賢於堯舜遠矣。』子貢曰:『見其禮而知其政,聞其樂而知其德。由百世之後,等百世之王,莫之能違也。自生民以來,未有夫子也。』有若曰:『豈惟民哉?麒麟之於走獸,鳳凰之於飛鳥,太山之於丘垤,河海之於行潦,類也。聖人之於民,亦類也。出於其類,拔乎其萃,自生民以來,未有盛於孔子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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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맹자』, 「공손추 하(公孫丑 下)」'''</br> | ||
+ | 맹자께서 벼슬을 내놓고 떠나가실 때, | ||
+ | 왕이 맹자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지난날에 뵙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모실 수 있게 되자 조정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이 뒤로 계속하여 선생님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감히 청하지는 못할지언정 저도 진실로 원하는 바입니다[不敢請固所願].” 후일에 왕이 신하인 시자(時子)에게 말하였다. | ||
+ | “내가 나라 한가운데 도성(都城)에다가 맹자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만 종(鍾)의 녹(祿)을 가지고 제자들을 기르게 하여, 여러 대부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공경(恭敬)하고 본받는 바가 있게 하려고 하오. 그대는 어찌 나를 위하여 말해주지 않소?” | ||
+ | 시자가 맹자의 제자 진자(陳子)(진진(陳臻))를 통하여 이 일을 맹자께 아뢰게 하자,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께 아뢰었다. | ||
+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네. 저 시자가 어찌 그것이 불가(不可)함을 알겠는가? 가령 내가 부자가 되고자 하였다면 내가 지난날 경(卿)이 되었을 때 십만 종의 녹을 사양하고는 이제 와서 만 종의 녹을 받겠는가? 이것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겠는가? | ||
+ |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괴이하다, 자숙의(子叔疑)여! 군주가 자신에게 정사를 맡겼다가 자신의 의견을 써주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할 터인데, 자신은 벼슬을 그만두면서 또다시 자기 자제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이 누구인들 부귀(富貴)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독 부귀 가운데에도 농단(壟斷)(높은 언덕)을 독점하려는 자가 있다.’ 하였네. | ||
+ | 옛날에 시장에서 교역(交易)하는 자들은 자기에게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자기에게 없는 물건과 바꾸었으며, 시장을 맡은 관리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분쟁을 다스리기만 할 뿐이었네. 그런데 천박한 한 사람이 반드시 농단을 찾아 거기에 올라가서 좌우로 둘러보고서 시장의 이익을 망라하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천하게 여겼네. 그리하여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니,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된 것은 이 천한 장부(丈夫)로부터 비롯되었네.”</br> | ||
+ | 孟子致為臣而歸。王就見孟子,曰:「前日願見而不可得,得侍,同朝甚喜。今又棄寡人而歸,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對曰:「不敢請耳,固所願也。」 | ||
+ | 他日,王謂時子曰:「我欲中國而授孟子室,養弟子以萬鍾,使諸大夫國人皆有所矜式。子盍為我言之?」 | ||
+ |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孟子曰:「然。夫時子惡知其不可也?如使予欲富,辭十萬而受萬,是為欲富乎?季孫曰:『異哉子叔疑!使己為政,不用,則亦已矣,又使其子弟為卿。人亦孰不欲富貴?而獨於富貴之中,有私龍斷焉。』古之為市也,以其所有易其所無者,有司者治之耳。有賤丈夫焉,必求龍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市利。人皆以為賤,故從而征之。征商,自此賤丈夫始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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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맹자』, 「등문공 하(滕文公 下)」'''</br> | ||
+ |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외부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더러 논쟁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찌 논쟁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부득이해서일세. 천하에 사람이 살아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어지러웠네[一治一亂]. | ||
+ | 요(堯)임금 당시에는 물이 역류해서 나라 안에 범람하여 뱀과 용이 서식하니, 사람들이 정착할 곳이 없어서 낮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었고, 높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굴을 파고 살았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홍수(洚水)가 나를 경계하였다.’ 하였으니, 홍수(洚水)란 홍수(洪水)일세. | ||
+ | 그래서 순(舜)임금께서 우(禹)로 하여금 홍수를 다스리게 하셨는데, 우가 물길을 파서 물을 바다로 흘러들게 하고 뱀과 용을 몰아 수초가 우거진 곳으로 쫓아버리자, 물이 땅 사이의 골짜기를 흐르게 되었으니, 양자강과 회수(淮水)‧하수(河水)‧한수(漢水)가 이것이네. 그리하여 홍수의 해가 멀어지고 사람을 해치는 새와 짐승들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이 평지(平地)에서 살게 되었네. | ||
+ | 요임금과 순임금께서 별세(別世)하신 뒤에, 성인의 도가 쇠퇴하여 폭군(暴君)이 대대로 나와서 백성들의 집을 파괴하여 웅덩이와 못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편안히 쉴 곳이 없었고, 농지(農地)를 폐하여 동산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이 의식(衣食)을 얻을 수 없었으며,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고, 동산과 늪지대와 소택(沼澤)이 많아지자 금수(禽獸)가 이르렀는데, 폭군 주왕(紂王)의 대에 이르러서 천하가 또다시 크게 어지러워졌네. | ||
+ | 주공(周公)께서 무왕(武王)을 도와 주왕을 죽이시고, 엄(奄)나라를 정벌하신 지 3년 만에 그 임금을 죽이시고, 주왕의 신하인 비렴(飛廉)을 바다 모퉁이로 몰아내어 죽이시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0개국이었고, 범과 표범,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내어 멀리 쫓으시니, 천하가 크게 기뻐하였네. 그러므로 《서경》 〈군아(君牙)〉에 이르기를 ‘크게 드러났도다, 문왕의 계책이여! 크게 계승하였도다, 무왕의 공적이여! 우리 후인(後人)들을 도와 계도해주시되, 모두 정도(正道)로써 하시고 결함이 없게 하셨다.’ 하였네. | ||
+ | 그 후 세상의 풍속이 쇠퇴하고 인간의 도리가 미약해져서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서,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는 자가 있으며,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가 있었네. | ||
+ | 공자(孔子)께서 이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으셨으니, 《춘추》 같은 역사서를 쓰는 것은 천자(天子)가 하는 일일세. 이 때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다.’ 하셨네. | ||
+ | 성왕(聖王)이 나오지 아니하여 제후들이 방자하고, 초야(草野)에 있는 선비들이 멋대로 의논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갔네. 양씨(楊氏)는 자신의 지조만을 위하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씨(墨氏)는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일세.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無父無君] 것은 바로 금수이네.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임금의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고 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하였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막기 때문일세.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내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다가, 끝내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네. | ||
+ |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수호하고, 양주와 묵적의 학설을 막으며, 방탕한 말을 추방하여 부정한 학설을 주장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네. 부정한 학설은 마음에서 나와 일에 해를 끼치며, 일에서 나와 정사에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 성인이 다시 나오시더라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네. | ||
+ | 옛적에 우임금께서 홍수(洪水)를 억제하시자 천하가 화평해졌고, 주공께서 이적(夷狄)을 겸병(兼幷)하고 맹수(猛獸)를 몰아내시자 백성들이 편안해졌으며, 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하였네. | ||
+ | 《시경》 〈비궁(閟宮)〉에 이르기를 ‘오랑캐인 융(戎)과 狄을 공격하니, 남쪽의 초나라와 서(舒)나라가 징계되어 감히 나에게 대항하는 자가 없다.’ 하였으니,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자는 주공께서도 응징하신 바일세. | ||
+ | 내가 또 인심(人心)을 바로잡아 부정한 학설을 종식시키며, 잘못된 행실을 막고 방탕한 말을 추방하여, 우임금과 주공과 공자 세 성인의 일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해서 그러는 것이네. | ||
+ | 양주와 묵적의 학설을 막자고 주장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네.”</br> | ||
+ | 公都子曰:「外人皆稱夫子好辯,敢問何也?」 | ||
+ | 孟子曰:「予豈好辯哉?予不得已也。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當堯之時,水逆行,氾濫於中國。蛇龍居之,民無所定。下者為巢,上者為營窟。《書》曰:『洚水警余。』洚水者,洪水也。使禹治之,禹掘地而注之海,驅蛇龍而放之菹。水由地中行,江、淮、河、漢是也。險阻既遠,鳥獸之害人者消,然後人得平土而居之。 | ||
+ | 「堯、舜既沒,聖人之道衰。暴君代作,壞宮室以為汙池,民無所安息;棄田以為園囿,使民不得衣食。邪說暴行又作,園囿、汙池、沛澤多而禽獸至。及紂之身,天下又大亂。周公相武王,誅紂伐奄,三年討其君,驅飛廉於海隅而戮之。滅國者五十,驅虎、豹、犀、象而遠之。天下大悅。《書》曰:『丕顯哉,文王謨!丕承哉,武王烈!佑啟我後人,咸以正無缺。』 | ||
+ | 「世衰道微,邪說暴行有作,臣弒其君者有之,子弒其父者有之。孔子懼,作《春秋》。《春秋》,天子之事也。是故孔子曰:『知我者其惟春秋乎!罪我者其惟春秋乎!』 | ||
+ |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橫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楊氏為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公明儀曰:『庖有肥肉,廄有肥馬,民有飢色,野有餓莩,此率獸而食人也。』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仁義充塞,則率獸食人,人將相食。吾為此懼,閑先聖之道,距楊墨,放淫辭,邪說者不得作。作於其心,害於其事;作於其事,害於其政。聖人復起,不易吾言矣。 | ||
+ | 「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詩》云:『戎狄是膺,荊舒是懲,則莫我敢承。』無父無君,是周公所膺也。我亦欲正人心,息邪說,距詖行,放淫辭,以承三聖者;豈好辯哉?予不得已也。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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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맹자』, 「이루 하(離婁 下)」'''</br> | ||
+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왕(禹王)께서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시고, 선(善)한 말을 좋아하셨다. | ||
+ | 탕왕(湯王)께서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시고 어진 이를 등용하시되 부류를 따지지 않으셨다[立賢無方]. | ||
+ | 문왕(文王)께서는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보듯이 가엾게 여기셨으며[視民如傷], 도(道)를 바라보시면 도를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간절히 구하셨다. | ||
+ | 무왕(武王)께서는 가까운 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으며, 먼 자를 잊지 않으셨다. | ||
+ | 주공(周公)께서는 삼왕(三王)인 우왕, 탕왕, 문왕‧무왕의 덕을 겸하시어 그분들이 하셨던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시되, 혹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하여 밤을 새우셨으며, 그래서 다행히 터득하게 되면 빨리 실행하기 위해 그대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셨다.”</br> | ||
+ | 孟子曰:「禹惡旨酒而好善言。湯執中,立賢無方。文王視民如傷,望道而未之見。武王不泄邇,不忘遠。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其有不合者,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旦。」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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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맹자』, 「이루 하(離婁 下)」'''</br> | ||
+ | 방몽(逄蒙)이 예(羿)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는데 예의 기술을 다 익히고 나서 ‘천하에 오직 예만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예를 죽였다. 맹자께서 이를 평하셨다. “이는 또한 예에게도 책임이 있다. 노나라의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는 ‘죄가 없을 듯하다.’고 했지만, 죄가 적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 ||
+ | 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침략하게 하자, 위나라에서는 유공(庾公) 사(斯)로 하여금 그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죽었구나!’ 하고, 그의 마부에게 ‘나를 추격해오는 자가 누구인가?’ 하고 물었는데, 그 마부가 ‘유공 사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자탁유자가 ‘나는 살았다.’ 하고 말하였다. 그 마부가 말하기를 ‘유공 사는 위나라의 명사수인데, 선생께서 살았다고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유공 사는 활쏘기를 윤공(尹公) 타(他)에게 배웠고, 윤공 타는 활쏘기를 나에게 배웠다. 그런데 윤공 타는 단정한 사람이니, 그가 사귄 벗도 반드시 단정할 것이다.’ 하였다. 유공 사가 도착하여 말하기를 ‘선생은 왜 활을 잡지 않습니까?’ 하자, 자탁유자는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하였다. 유공 사가 말하기를 ‘소인은 활쏘기를 윤공 타에게 배웠고, 윤공 타는 활쏘기를 선생에게 배웠으니, 저는 차마 선생의 기술을 가지고 선생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나라의 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들겨 화살촉을 빼버린 다음 네 대의 화살을 쏜 뒤에 돌아갔다.”</br> | ||
+ | 逄蒙學射於羿,盡羿之道,思天下惟羿為愈己,於是殺羿。孟子曰:「是亦羿有罪焉。」公明儀曰:「宜若無罪焉。」曰:「薄乎云爾,惡得無罪?鄭人使子濯孺子侵衛,衛使庾公之斯追之。子濯孺子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吾死矣夫!』問其僕曰:『追我者誰也?』其僕曰:『庾公之斯也。』曰:『吾生矣。』其僕曰:『庾公之斯,衛之善射者也,夫子曰「吾生」,何謂也?』曰:『庾公之斯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我。夫尹公之他,端人也,其取友必端矣。』庾公之斯至,曰:『夫子何為不執弓?』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曰:『小人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夫子。我不忍以夫子之道反害夫子。雖然,今日之事,君事也,我不敢廢。』抽矢扣輪,去其金,發乘矢而後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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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맹자』, 「이루 하(離婁 下)」'''</br> | ||
+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일반인과 다른 것은 그 마음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仁)을 마음에 보존하고, 예(禮)를 마음에 보존한다. | ||
+ | 인자(仁者)는 남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자는 남을 공경한다. | ||
+ | 남을 사랑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해주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공경해준다. | ||
+ |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불인(不仁)하고, 내가 반드시 예가 없었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일이 어찌 이른단 말인가?’라고 한다. | ||
+ | 스스로 돌이켜보아 인하였고, 스스로 돌이켜보아 예가 있었는데도,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 ||
+ | ‘내가 반드시 진실하지 못하였는가 보다.’ 한다. | ||
+ | 스스로 반성해보아도 진실하였는데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망령된 자이다.’ 할 것이다. 이와 같다면 금수(禽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금수에게 또 무엇을 따지겠는가? | ||
+ | 이 때문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終身之憂]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일시적인 걱정거리[一朝之患]는 없다. 군자가 종신토록 근심해야 할 것으로는 이러한 것이 있다. 순(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께서는 천하에 모범이 되셔서 후세에 전해지시거늘,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에 불과하니, 이러한 것이라면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순임금처럼 하면 될 뿐이다. 군자는 일시적으로 걱정하는 것이 없으니, 인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면 된다. 혹 하루아침의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군자는 걱정하지 않는다.”</br> | ||
+ | 孟子曰:「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仁者愛人,有禮者敬人。愛人者人恆愛之,敬人者人恆敬之。有人於此,其待我以橫逆,則君子必自反也:我必不仁也,必無禮也,此物奚宜至哉?其自反而仁矣,自反而有禮矣,其橫逆由是也,君子必自反也:我必不忠。自反而忠矣,其橫逆由是也,君子曰:『此亦妄人也已矣。如此則與禽獸奚擇哉?於禽獸又何難焉?』是故君子有終身之憂,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則有之:舜人也,我亦人也。舜為法於天下,可傳於後世,我由未免為鄉人也,是則可憂也。憂之如何?如舜而已矣。若夫君子所患則亡矣。非仁無為也,非禮無行也。如有一朝之患,則君子不患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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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맹자』, 「만장 상(萬章 上)」'''</br> | ||
+ | 만장이 여쭈었다. “《시경》 〈남산(南山)〉에 이르기를 ‘아내를 얻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 말대로라면 순처럼 하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도 않고 장가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 ||
+ |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장가들 수가 없었을 것이네. 남녀(男女)가 혼인하는 것은 사람의 큰 도리이니, 만일 순이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장가드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아서 사람의 큰 도리를 폐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을 것이네. 이 때문에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 않은 것이네.” | ||
+ | “순이 아뢰지 않고 장가든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만, 요임금께서 순에게 딸을 시집보내시면서 순의 부모에게 고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요임금 또한 순의 부모에게 고하면 딸을 시집보내실 수 없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네.” | ||
+ | “순의 부모가 순에게 곳간을 손질하게 하고는 순이 곳간으로 올라가자 사다리를 치운 다음 순의 아버지 고수(瞽瞍)가 곳간에 불을 질렀으며, 또 한 번은 순에게 우물을 치게 하고는 순이 나오려 하자 흙을 덮어 생매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복동생인 상(象)은 순이 죽은 줄 알고 말하기를 ‘꾀를 내어 도군(都君)(순의 별칭)을 생매장시킨 것은 모두 나의 공로이니, 순의 소와 양은 부모의 것이고, 곡식창고도 부모의 것이고, 방패와 창은 내 것이고, 거문고도 내 것이고, 활도 내 것이고, 두 형수는 내 잠자리를 시중들게 하겠다.’ 하고는, 상이 순의 집에 들어가니, 순이 평상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에 놀란 상이 둘러대기를 ‘형님이 너무 그리워서 왔습니다.’ 하고는 부끄러워하였는데, 순은 말하기를 ‘너는 내게 와서 이 신하와 백성들을 다스리라.’ 하였다고 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순은 상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몰랐습니까?” “어찌 몰랐겠는가마는 동생인 상이 근심하면 자신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한 것이네.” | ||
+ |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쁜 척한 것입니까?” “아닐세. 옛날에 정(鄭)나라 대부 자산(子産)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자산이 연못 관리인을 시켜 그것을 못에서 기르게 하였네. 그런데 그가 물고기를 삶아먹어 버리고는 보고하기를 ‘처음에 고기를 놓아주자 비실비실 하더니, 조금 있자 팔팔해져서 유유히 갔습니다.’ 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였네. 이에 연못 관리인이 나와서 말하기를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먹었는데,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더군.’ 하였네. 그러므로 군자는 그럴듯한 방법으로 속일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속이기는 어렵네. 저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찾아왔으므로 순이 진실로 믿고서 기뻐한 것이니, 어찌 거짓으로 기쁜 척하였겠는가?”</br> | ||
+ | 萬章問曰:「《詩》云:『娶妻如之何?必告父母。』信斯言也,宜莫如舜。舜之不告而娶,何也?」 | ||
+ | 孟子曰:「告則不得娶。男女居室,人之大倫也。如告,則廢人之大倫,以懟父母,是以不告也。」 | ||
+ | 萬章曰:「舜之不告而娶,則吾既得聞命矣;帝之妻舜而不告,何也?」 | ||
+ | 曰:「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 | ||
+ | 萬章曰:「父母使舜完廩,捐階,瞽瞍焚廩。使浚井,出,從而揜之。象曰:『謨蓋都君咸我績。牛羊父母,倉廩父母,干戈朕,琴朕,弤朕,二嫂使治朕棲。』象往入舜宮,舜在床琴。象曰:『鬱陶思君爾。』忸怩。舜曰:『惟茲臣庶,汝其于予治。』不識舜不知象之將殺己與?」 | ||
+ | 曰:「奚而不知也?象憂亦憂,象喜亦喜。」 | ||
+ | 曰:「然則舜偽喜者與?」 | ||
+ | 曰:「否。昔者有饋生魚於鄭子產,子產使校人畜之池。校人烹之,反命曰:『始舍之圉圉焉,少則洋洋焉,攸然而逝。』子產曰『得其所哉!得其所哉!』校人出,曰:『孰謂子產智?予既烹而食之,曰:得其所哉?得其所哉。』故君子可欺以其方,難罔以非其道。彼以愛兄之道來,故誠信而喜之,奚偽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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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맹자』, 「만장 상(萬章 上)」'''</br> | ||
+ | 만장이 여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윤이 요리하는 재주를 가지고 탕임금께 등용해주기를 요구하였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 ||
+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그렇지 않네. 이윤은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요순의 도를 좋아하였네. 그리하여 의(義)가 아니고 도(道)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고, 말 4천 마리를 매어놓아도 보지 않았으며,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았고,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네. | ||
+ | 탕임금께서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어 이윤을 초빙하시자, 아무 욕심 없이 말하기를 ‘내가 탕임금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아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밭이랑 가운데서 농사지으면서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네. | ||
+ | 탕임금께서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초빙하시자, 이윽고 마음을 바꾸며 말하기를 ‘내가 밭이랑 가운데서 농사지으면서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이, 내 어찌 이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훌륭한 임금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 어찌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훌륭한 임금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 어찌 그렇게 되는 것을 내 몸에서 직접 보는 것만 하겠는가? | ||
+ | 하늘이 이 백성을 낼 때에 먼저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중에 아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먼저 깨달은 자로 하여금 나중에 깨닫는 자를 깨우치게 하였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 먼저 깨달은 자이니, 내 장차 이 도로써 이 백성들을 깨우칠 것이다. 내가 이들을 깨우치지 않는다면 그 누가 깨우치겠는가?’ 하였네. | ||
+ | 천하의 백성들 가운데 필부필부(匹夫匹婦)라도 요순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들을 도랑 가운데로 밀어넣은 것처럼 여겼네. 그가 천하의 중책을 자신의 임무로 여김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탕임금께 나아가 설득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제한 것이네. | ||
+ | 나는 자신을 굽히고서 남을 바로잡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하물며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 천하를 바로잡는 것에 있어서이겠는가? 성인(聖人)의 행동은 똑같지 않아서, 혹은 멀리 떠나 은둔하기도 하고, 혹은 벼슬하여 군주 가까이 있기도 하며, 혹은 떠나기도 하고, 혹은 떠나지 않기도 하지만, 귀결되는 점은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일 뿐이네. | ||
+ | 나는 요순의 도를 가지고 탕임금께 등용해주기를 요구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요리하는 재주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네. | ||
+ | 《서경》 〈이훈(伊訓)〉에 이르기를 ‘하늘의 벌이 폭군 걸왕의 목궁(牧宮)에 처음 내려진 것은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는 날에 처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 이윤이 박읍(亳邑)에서 일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였네.”</br> | ||
+ |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 ||
+ |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非其義也,非其道也,祿之以天下,弗顧也;繫馬千駟,弗視也。非其義也,非其道也,一介不以與人,一介不以取諸人,湯使人以幣聘之,囂囂然曰:『我何以湯之聘幣為哉?我豈若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哉?』湯三使往聘之,既而幡然改曰:『與我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吾豈若使是君為堯舜之君哉?吾豈若使是民為堯舜之民哉?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天之生此民也,使先知覺後知,使先覺覺後覺也。予,天民之先覺者也;予將以斯道覺斯民也。非予覺之,而誰也?』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故就湯而說之以伐夏救民。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況辱己以正天下者乎?聖人之行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矣。吾聞其以堯舜之道要湯,未聞以割烹也。伊訓曰:『天誅造攻自牧宮,朕載自亳。』」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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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윤리/도덕적 판단의 공통성(보편성)'''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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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br> | ||
+ | 맹자(孟子)께서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나셨는데, | ||
+ | 왕이 말하였다.“노선생(老先生)께서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무엇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 ||
+ |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 ||
+ |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할 것이니, 사(士)와 서인(庶人)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을 소유한 공경(公卿)의 집안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을 소유한 대부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가지며 천에서 백을 가지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의(義)를 하찮게 여기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 ||
+ | 어질고서 자기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있지 않으며, 의(義)롭고서 자기 임금을 하찮게 여기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 ||
+ |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 할 따름이니,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br> | ||
+ | 孟子見梁惠王。王曰:「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 ||
+ |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乘之國弒其君者,必千乘之家;千乘之國弒其君者,必百乘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王亦曰仁義而已矣,何必曰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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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br> | ||
+ |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우리 진(晉)나라가 천하에 막강하다는 사실은 노선생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과인(寡人)의 대에 이르러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에게 패전하여 맏아들이 전사하였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게 영토를 700리나 잃었으며,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게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전사한 자를 위해서 한번 설욕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
+ |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땅이 사방 100리만 되어도 그것을 가지고 천하에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 ||
+ | 왕께서 만일 인정(仁政)을 베풀어 형벌을 줄이시고 세금을 적게 거두신다면, 백성들이 여유가 있어서 밭을 깊이 갈고 김을 잘 맬 것이며, 장성한 자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나가서는 어른과 상관을 섬길 것이니, 이렇다면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상대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 반면에 저 적국의 군주가 자기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을 매어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 ||
+ | 저들이 이처럼 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그때 가서 정벌하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 ||
+ | 그러므로 옛말에 ‘인자(仁者)에게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仁者無敵].’고 한 것이니, 왕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진(晉)나라가 분할되어 위(魏)나라‧한(韓)나라‧조(趙)나라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br> | ||
+ | 梁惠王曰:「晉國,天下莫強焉,叟之所知也。及寡人之身,東敗於齊,長子死焉;西喪地於秦七百里;南辱於楚。寡人恥之,願比死者一洒之,如之何則可?」 | ||
+ | 孟子對曰:「地方百里而可以王。王如施仁政於民,省刑罰,薄稅斂,深耕易耨。壯者以暇日修其孝悌忠信,入以事其父兄,出以事其長上,可使制梃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彼奪其民時,使不得耕耨以養其父母,父母凍餓,兄弟妻子離散。彼陷溺其民,王往而征之,夫誰與王敵?故曰:『仁者無敵。』王請勿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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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br> | ||
+ | 맹자께서 양나라 양왕(襄王)을 만나보시고, | ||
+ |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고, 그 앞에 가까이 나아가도 두려워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천하가 어떻게 안정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한곳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하였다. | ||
+ | ‘누가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 ||
+ |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
+ | 그리고 ‘누가 그에게 귀의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 ||
+ |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하에 귀의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싹을 아십니까? 7, 8월 사이에 날씨가 가물면 벼싹이 시들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일으켜 좍좍 비를 내리면 벼싹이 생기 있게 일어납니다. 그 기세가 이와 같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임금 가운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는 것은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 누가 그 기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br> | ||
+ | 孟子見梁襄王。出,語人曰:「望之不似人君,就之而不見所畏焉。卒然問曰:『天下惡乎定?』吾對曰:『定于一。』 | ||
+ | 『孰能一之?』對曰:『不嗜殺人者能一之。』 | ||
+ | 『孰能與之?』對曰:『天下莫不與也。王知夫苗乎?七八月之間旱,則苗槁矣。天油然作雲,沛然下雨,則苗浡然興之矣。其如是,孰能禦之?今夫天下之人牧,未有不嗜殺人者也,如有不嗜殺人者,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誠如是也,民歸之,由水之就下,沛然誰能禦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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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br> | ||
+ |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하여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무슨 연유로 내가 가능한 줄을 아십니까?” “제가 제나라 신하 호흘(胡齕)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께서 당(堂)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이를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종(鍾)의 틈을 바르는 데 쓰려고 끌고 갑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왕께서 ‘소를 놓아주어라. 소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死地)로 나아가는 것을 내 차마 볼 수가 없다.’ 하시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종의 틈을 바르는 것을 그만두오리까?’ 하니, 왕께서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羊)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 ||
+ |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큰 것을 작은 것과 바꾸게 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소가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 |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도 있을 것입니다만, 제나라가 아무리 좁고 작으나 내 어찌 소 한 마리를 아까워하겠습니까? 다만 죄 없이 벌벌 떨며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소 대신 양으로 바꾸게 한 것입니다.” | ||
+ |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과 바꾸셨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일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구별하셨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이 나더러 재물을 아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려.”</br> | ||
+ | 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 ||
+ | 孟子對曰:「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無以,則王乎?」 | ||
+ | 曰:「德何如,則可以王矣?」 | ||
+ | 曰:「保民而王,莫之能禦也。」 | ||
+ | 曰:「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 ||
+ | 曰:「可。」 | ||
+ | 曰:「何由知吾可也?」 | ||
+ | 曰:「臣聞之胡齕曰,王坐於堂上,有牽牛而過堂下者,王見之,曰:『牛何之?』對曰:『將以釁鐘。』王曰:『舍之!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對曰:『然則廢釁鐘與?』曰:『何可廢也?以羊易之!』不識有諸?」 | ||
+ | 曰:「有之。」 | ||
+ | 曰:「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為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 ||
+ | 王曰:「然。誠有百姓者。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即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故以羊易之也。」 | ||
+ | 曰:「王無異於百姓之以王為愛也。以小易大,彼惡知之?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則牛羊何擇焉?」 | ||
+ | 王笑曰:「是誠何心哉?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宜乎百姓之謂我愛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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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br> | ||
+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있다. | ||
+ | 선왕(先王)께서는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곧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政治)를 하셨다.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 ||
+ |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이 드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交分)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고을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런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에 듣게 될 비난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 ||
+ |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해하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악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 ||
+ |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이며,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 ||
+ |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인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이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 ||
+ |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워나갈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미미하지만 끝에 가서는 기세가 대단할 것이다. 진실로 이것을 확충(擴充)시킨다면 온 천하도 보호할 수 있겠지만, 진실로 이것을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조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br> | ||
+ | 孟子曰:「人皆有不忍人之心。先王有不忍人之心,斯有不忍人之政矣。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治天下可運之掌上。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無羞惡之心,非人也;無辭讓之心,非人也;無是非之心,非人也。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智之端也。人之有是四端也,猶其有四體也。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自賊者也;謂其君不能者,賊其君者也。凡有四端於我者,知皆擴而充之矣,若火之始然,泉之始達。苟能充之,足以保四海;苟不充之,不足以事父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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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만장 상까지</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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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늘의 논의 주제(2023.9.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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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1. 딜레마 상황이 왜 생기는 걸까요?'''</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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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pan style="color:#ff0000;">'''2. 맹자가 제시한 윤리/도덕적 판단의 다양성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span> | ||
+ | ☞ <span style="color:#ff0000;">'''3. 이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보편적, 공통적인 원칙 혹은 근거는 무엇인가요?'''</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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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 유학과 디지털인문융합]] |
2023년 9월 19일 (화) 23:03 기준 최신판
☞ 자율주행차 사고 문제는 고전적인 트롤리 딜레마 이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유학에는 이러한 딜레마 상황이 없나요? 맹자에는 딜레마적 상황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맹자의 딜레마는 트롤리 딜레마와 같나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왜 달라질까요?
☞ 그런데 딜레마 상황 자체가 왜 설정되는 것일까요?
- MIT Moral Machine(도덕 게임)을 함께 하면서 경험한 것들
- 사람들마다 똑같은 딜레마 상황에서 판단하는 기준이 달랐다
- 어떤 사람은 자신을 운전자에, 어떤 사람은 보행자에 위치시키거나, 또 어떤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 제3자의 관점에서 그 상황을 보았다
- A와 B, 둘 중에 하나에 국한될 수 없는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예를 들어 관계라는 변수에 의해 Moral Machine의 양상은 전혀 달라질 수 있음
- 왜 누군가는 꼭 죽어야 하는가, 왜 죽음을 전제로 두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어떤 사람은 마음, 심성의 내면의 문제에서 문제상황을 들여다보고, 또 어떤 사람은 시스템, 사회구조의 외부 요인에서 문제상황을 들여다보았다.
☞ 이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 사람들의 다양한 윤리/도덕적 판단 기준+다양성을 아우르는 보편적 원칙, 이게 가능할까요?
맹자의 딜레마[편집 | 원본 편집]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1(주석서, 한글번역문): 동양고전종합DB
☞ 선진(先秦) 유학 원전 자료 참고 사이트2(원문 DB): Chinese Text Project
☞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공생의 미덕은: 당장은 DB로 보더라도 논문을 쓸 때에는 원문 책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윤리/도덕적 판단의 다양성[편집 | 원본 편집]
☞ 윤리/도덕적 판단의 다양성의 기준이 있나요? 그 다양한 양상은 어떻게 전개되나요?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 번역문 출처: 동양고전종합DB ☞ 원문DB 출처: Chinese Text Project
★ 참고: 우선 DB에 탑재된 것으로 맥락을 파악하되 논문을 쓸 때에는 본인이 직접 번역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원문 한자가 맞는지도 꼭 책을 찾아서 확인해야 합니다. DB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고, 판본에 따라 글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맹자』 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나열했습니다.(중요도순X)
1.『맹자』, 「양혜왕 하(梁惠王 下)」
노(魯)나라 평공(平公)이 외출하려고 하는데, 임금이 총애하는 장창(臧倉)이라는 자가 여쭈었다. “전에는 임금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담당관리에게 갈 곳을 하명하셨는데, 지금은 수레가 이미 출발 채비를 마쳤는데도 담당관리가 갈 곳을 알지 못하니, 어디를 가시려는 것인지 감히 여쭙습니다.” 그러자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고 하오.” “어째서입니까? 한 나라의 군주인 임금께서 몸을 낮추시어 필부(匹夫)에게 먼저 예(禮)를 베푸시는 까닭은 그가 현명하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禮義)는 현명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법인데 맹자의 어머니 상(喪)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으니, 맹자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만나보지 마십시오.” “알겠소.” 맹자의 제자로서 노나라에서 벼슬하고 있던 악정자(樂正子)가 들어가 평공을 뵙고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맹가(孟軻)를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평공이 말하였다. “혹자가 과인에게 말하기를 ‘맹자의 어머니 상이 아버지 상보다 더 성대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가서 만나보지 않았소.” “무슨 말씀입니까? 임금께서 이른바 더 성대하였다는 것은 아버지 상은 사(士)의 예(禮)로써 하고 어머니 상은 대부(大夫)의 예로써 하였으며, 아버지 상에는 삼정(三鼎)을 쓰고 어머니 상에는 오정(五鼎)을 쓴 것을 말합니까?” “아니오. 내관(內棺)과 외관(外棺), 수의(壽衣)와 이불을 아름답게 한 것을 말하오.” “이것은 이른바 더 성대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니, 아버지의 상을 치를 때와 어머니의 상을 치를 때 빈부(貧富)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魯平公將出。嬖人臧倉者請曰:「他日君出,則必命有司所之。今乘輿已駕矣,有司未知所之。敢請。」公曰:「將見孟子。」曰:「何哉?君所為輕身以先於匹夫者,以為賢乎?禮義由賢者出。而孟子之後喪踰前喪。君無見焉!」公曰:「諾。」 樂正子入見,曰:「君奚為不見孟軻也?」曰:「或告寡人曰,『孟子之後喪踰前喪』,是以不往見也。」曰:「何哉君所謂踰者?前以士,後以大夫;前以三鼎,而後以五鼎與?」曰:「否。謂棺槨衣衾之美也。」曰:「非所謂踰也,貧富不同也。」
2.『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은 말을 잘하였고, 염우(冉牛)‧민자(閔子)‧안연(顔淵)은 덕행(德行)을 잘 말하였는데, 공자께서는 이 두 가지를 겸하셨으되, ‘나는 사명(辭命)에 있어서는 능하지 못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잘 아시는데다 호연지기를 길러서 덕행에도 뛰어나시니,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 “아, 이 무슨 말인가? 옛날에 자공이 공자께 여쭙기를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십니다.’ 하자, 공자께서 ‘성인의 일은 내 능하지 못하지만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이네.’ 하시니, 자공이 말하기를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음은 지혜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음은 인(仁)입니다. 인하고 또 지혜로우시니 선생님은 이미 성인이십니다.’ 하였네. 성인은 공자께서도 자처(自處)하지 않으셨는데, 이 무슨 말인가?” “전에 제가 들으니, ‘자하(子夏)‧자유(子游)‧자장(子張)은 모두 성인의 한 부분만 갖추고 있었고, 염우‧민자‧안연은 전체를 갖추고는 있으나 미약하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중 어느 쪽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감히 선생님께서 자처하시는 바를 여쭙겠습니다.” “이 문제는 잠시 놓아두세.”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어떻습니까?” “백이와 이윤은 도(道)가 같지 않았네. 섬길 만한 군주(君主)가 아니면 섬기지 않고,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워지면 물러간 것은 백이이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 것은 이윤이며,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무를 만하면 오래 머물고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난 것은 공자이시니, 이분들은 모두 옛 성인이시네. 나는 아직 그런 것을 행할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일세.” “백이와 이윤이 그처럼 공자와 동등(同等)합니까?” “아닐세.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네.” “그렇다면 세 분이 같은 점이 있습니까?” “있지. 백 리 되는 땅을 얻어서 임금 노릇을 한다면 모두 제후들에게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일세. 그러나 한 가지의 의롭지 않은 일을 하거나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하시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같은 점이네.” “감히 그 다른 점을 여쭙겠습니다.” “재아(宰我)‧자공(子貢)‧유약(有若)은 지혜가 충분히 성인을 알아볼 수 있었으니, 이들의 지혜가 낮다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네. 재아는 ‘내가 선생님을 관찰하건대 요순(堯舜)보다 월등히 낫다.’ 하였네. 자공은 ‘예(禮)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알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면 그 왕의 덕(德)을 알 수 있으니, 백세(百世)의 뒤에서 백세의 왕들을 등급 매겨보아도 군주 중에 이 기준을 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 하였네. 유약은 ‘어찌 단지 사람만 그러하겠는가? 달리는 짐승 중에 기린(麒麟), 나는 새 중에 봉황(鳳凰), 언덕 중에 태산(泰山), 도랑 중에 하해(河海)가 같은 종류이고, 백성 중에 성인의 위치도 이와 같다. 같은 종류 중에서 빼어나고 같은 무리 중에서 빼어났으나, 사람이 있은 이래로 공자보다 더 훌륭한 분은 계시지 않다.’ 하였네.”
「宰我、子貢善為說辭,冉牛、閔子、顏淵善言德行。孔子兼之,曰:『我於辭命則不能也。』然則夫子既聖矣乎?」 曰:「惡!是何言也?昔者子貢、問於孔子曰:『夫子聖矣乎?』孔子曰:『聖則吾不能,我學不厭而教不倦也。』子貢曰:『學不厭,智也;教不倦,仁也。仁且智,夫子既聖矣!』夫聖,孔子不居,是何言也?」 「昔者竊聞之: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冉牛、閔子、顏淵則具體而微。敢問所安。」 曰:「姑舍是。」 曰:「伯夷、伊尹何如?」 曰:「不同道。非其君不事,非其民不使;治則進,亂則退,伯夷也。何事非君,何使非民;治亦進,亂亦進,伊尹也。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孔子也。皆古聖人也,吾未能有行焉;乃所願,則學孔子也。」 「伯夷、伊尹於孔子,若是班乎?」 曰:「否。自有生民以來,未有孔子也。」 曰:「然則有同與?」 曰:「有。得百里之地而君之,皆能以朝諸侯有天下。行一不義、殺一不辜而得天下,皆不為也。是則同。」 曰:「敢問其所以異?」 曰:「宰我、子貢、有若智足以知聖人。汙,不至阿其所好。宰我曰:『以予觀於夫子,賢於堯舜遠矣。』子貢曰:『見其禮而知其政,聞其樂而知其德。由百世之後,等百世之王,莫之能違也。自生民以來,未有夫子也。』有若曰:『豈惟民哉?麒麟之於走獸,鳳凰之於飛鳥,太山之於丘垤,河海之於行潦,類也。聖人之於民,亦類也。出於其類,拔乎其萃,自生民以來,未有盛於孔子也。』」
3.『맹자』, 「공손추 하(公孫丑 下)」
맹자께서 벼슬을 내놓고 떠나가실 때, 왕이 맹자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지난날에 뵙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모실 수 있게 되자 조정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이 뒤로 계속하여 선생님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감히 청하지는 못할지언정 저도 진실로 원하는 바입니다[不敢請固所願].” 후일에 왕이 신하인 시자(時子)에게 말하였다. “내가 나라 한가운데 도성(都城)에다가 맹자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만 종(鍾)의 녹(祿)을 가지고 제자들을 기르게 하여, 여러 대부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공경(恭敬)하고 본받는 바가 있게 하려고 하오. 그대는 어찌 나를 위하여 말해주지 않소?” 시자가 맹자의 제자 진자(陳子)(진진(陳臻))를 통하여 이 일을 맹자께 아뢰게 하자, 진자가 시자의 말을 맹자께 아뢰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네. 저 시자가 어찌 그것이 불가(不可)함을 알겠는가? 가령 내가 부자가 되고자 하였다면 내가 지난날 경(卿)이 되었을 때 십만 종의 녹을 사양하고는 이제 와서 만 종의 녹을 받겠는가? 이것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겠는가?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괴이하다, 자숙의(子叔疑)여! 군주가 자신에게 정사를 맡겼다가 자신의 의견을 써주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할 터인데, 자신은 벼슬을 그만두면서 또다시 자기 자제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이 누구인들 부귀(富貴)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유독 부귀 가운데에도 농단(壟斷)(높은 언덕)을 독점하려는 자가 있다.’ 하였네. 옛날에 시장에서 교역(交易)하는 자들은 자기에게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자기에게 없는 물건과 바꾸었으며, 시장을 맡은 관리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분쟁을 다스리기만 할 뿐이었네. 그런데 천박한 한 사람이 반드시 농단을 찾아 거기에 올라가서 좌우로 둘러보고서 시장의 이익을 망라하자,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천하게 여겼네. 그리하여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니,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하게 된 것은 이 천한 장부(丈夫)로부터 비롯되었네.”
孟子致為臣而歸。王就見孟子,曰:「前日願見而不可得,得侍,同朝甚喜。今又棄寡人而歸,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對曰:「不敢請耳,固所願也。」 他日,王謂時子曰:「我欲中國而授孟子室,養弟子以萬鍾,使諸大夫國人皆有所矜式。子盍為我言之?」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孟子曰:「然。夫時子惡知其不可也?如使予欲富,辭十萬而受萬,是為欲富乎?季孫曰:『異哉子叔疑!使己為政,不用,則亦已矣,又使其子弟為卿。人亦孰不欲富貴?而獨於富貴之中,有私龍斷焉。』古之為市也,以其所有易其所無者,有司者治之耳。有賤丈夫焉,必求龍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市利。人皆以為賤,故從而征之。征商,自此賤丈夫始矣。
4.『맹자』, 「등문공 하(滕文公 下)」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외부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더러 논쟁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찌 논쟁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부득이해서일세. 천하에 사람이 살아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어지러웠네[一治一亂]. 요(堯)임금 당시에는 물이 역류해서 나라 안에 범람하여 뱀과 용이 서식하니, 사람들이 정착할 곳이 없어서 낮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었고, 높은 지역에 사는 자들은 굴을 파고 살았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홍수(洚水)가 나를 경계하였다.’ 하였으니, 홍수(洚水)란 홍수(洪水)일세. 그래서 순(舜)임금께서 우(禹)로 하여금 홍수를 다스리게 하셨는데, 우가 물길을 파서 물을 바다로 흘러들게 하고 뱀과 용을 몰아 수초가 우거진 곳으로 쫓아버리자, 물이 땅 사이의 골짜기를 흐르게 되었으니, 양자강과 회수(淮水)‧하수(河水)‧한수(漢水)가 이것이네. 그리하여 홍수의 해가 멀어지고 사람을 해치는 새와 짐승들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이 평지(平地)에서 살게 되었네. 요임금과 순임금께서 별세(別世)하신 뒤에, 성인의 도가 쇠퇴하여 폭군(暴君)이 대대로 나와서 백성들의 집을 파괴하여 웅덩이와 못을 만들어서 백성들이 편안히 쉴 곳이 없었고, 농지(農地)를 폐하여 동산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이 의식(衣食)을 얻을 수 없었으며,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고, 동산과 늪지대와 소택(沼澤)이 많아지자 금수(禽獸)가 이르렀는데, 폭군 주왕(紂王)의 대에 이르러서 천하가 또다시 크게 어지러워졌네. 주공(周公)께서 무왕(武王)을 도와 주왕을 죽이시고, 엄(奄)나라를 정벌하신 지 3년 만에 그 임금을 죽이시고, 주왕의 신하인 비렴(飛廉)을 바다 모퉁이로 몰아내어 죽이시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0개국이었고, 범과 표범,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내어 멀리 쫓으시니, 천하가 크게 기뻐하였네. 그러므로 《서경》 〈군아(君牙)〉에 이르기를 ‘크게 드러났도다, 문왕의 계책이여! 크게 계승하였도다, 무왕의 공적이여! 우리 후인(後人)들을 도와 계도해주시되, 모두 정도(正道)로써 하시고 결함이 없게 하셨다.’ 하였네. 그 후 세상의 풍속이 쇠퇴하고 인간의 도리가 미약해져서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서,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는 자가 있으며,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가 있었네. 공자(孔子)께서 이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으셨으니, 《춘추》 같은 역사서를 쓰는 것은 천자(天子)가 하는 일일세. 이 때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며,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때문일 것이다.’ 하셨네. 성왕(聖王)이 나오지 아니하여 제후들이 방자하고, 초야(草野)에 있는 선비들이 멋대로 의논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학설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갔네. 양씨(楊氏)는 자신의 지조만을 위하는 위아설(爲我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씨(墨氏)는 똑같이 사랑하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으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일세.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無父無君] 것은 바로 금수이네. 공명의(公明儀)가 말하기를 ‘임금의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도,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고 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하였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막기 때문일세.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내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다가, 끝내는 사람들끼리 서로 잡아먹게 될 것이네.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先聖)의 도를 수호하고, 양주와 묵적의 학설을 막으며, 방탕한 말을 추방하여 부정한 학설을 주장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네. 부정한 학설은 마음에서 나와 일에 해를 끼치며, 일에서 나와 정사에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 성인이 다시 나오시더라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네. 옛적에 우임금께서 홍수(洪水)를 억제하시자 천하가 화평해졌고, 주공께서 이적(夷狄)을 겸병(兼幷)하고 맹수(猛獸)를 몰아내시자 백성들이 편안해졌으며, 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하였네. 《시경》 〈비궁(閟宮)〉에 이르기를 ‘오랑캐인 융(戎)과 狄을 공격하니, 남쪽의 초나라와 서(舒)나라가 징계되어 감히 나에게 대항하는 자가 없다.’ 하였으니,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자는 주공께서도 응징하신 바일세. 내가 또 인심(人心)을 바로잡아 부정한 학설을 종식시키며, 잘못된 행실을 막고 방탕한 말을 추방하여, 우임금과 주공과 공자 세 성인의 일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해서 그러는 것이네. 양주와 묵적의 학설을 막자고 주장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네.”
公都子曰:「外人皆稱夫子好辯,敢問何也?」 孟子曰:「予豈好辯哉?予不得已也。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當堯之時,水逆行,氾濫於中國。蛇龍居之,民無所定。下者為巢,上者為營窟。《書》曰:『洚水警余。』洚水者,洪水也。使禹治之,禹掘地而注之海,驅蛇龍而放之菹。水由地中行,江、淮、河、漢是也。險阻既遠,鳥獸之害人者消,然後人得平土而居之。 「堯、舜既沒,聖人之道衰。暴君代作,壞宮室以為汙池,民無所安息;棄田以為園囿,使民不得衣食。邪說暴行又作,園囿、汙池、沛澤多而禽獸至。及紂之身,天下又大亂。周公相武王,誅紂伐奄,三年討其君,驅飛廉於海隅而戮之。滅國者五十,驅虎、豹、犀、象而遠之。天下大悅。《書》曰:『丕顯哉,文王謨!丕承哉,武王烈!佑啟我後人,咸以正無缺。』 「世衰道微,邪說暴行有作,臣弒其君者有之,子弒其父者有之。孔子懼,作《春秋》。《春秋》,天子之事也。是故孔子曰:『知我者其惟春秋乎!罪我者其惟春秋乎!』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橫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楊氏為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公明儀曰:『庖有肥肉,廄有肥馬,民有飢色,野有餓莩,此率獸而食人也。』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仁義充塞,則率獸食人,人將相食。吾為此懼,閑先聖之道,距楊墨,放淫辭,邪說者不得作。作於其心,害於其事;作於其事,害於其政。聖人復起,不易吾言矣。 「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詩》云:『戎狄是膺,荊舒是懲,則莫我敢承。』無父無君,是周公所膺也。我亦欲正人心,息邪說,距詖行,放淫辭,以承三聖者;豈好辯哉?予不得已也。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也。」
5.『맹자』, 「이루 하(離婁 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왕(禹王)께서는 맛있는 술을 싫어하시고, 선(善)한 말을 좋아하셨다. 탕왕(湯王)께서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시고 어진 이를 등용하시되 부류를 따지지 않으셨다[立賢無方]. 문왕(文王)께서는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보듯이 가엾게 여기셨으며[視民如傷], 도(道)를 바라보시면 도를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간절히 구하셨다. 무왕(武王)께서는 가까운 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으며, 먼 자를 잊지 않으셨다. 주공(周公)께서는 삼왕(三王)인 우왕, 탕왕, 문왕‧무왕의 덕을 겸하시어 그분들이 하셨던 네 가지 일을 시행할 것을 생각하시되, 혹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하여 밤을 새우셨으며, 그래서 다행히 터득하게 되면 빨리 실행하기 위해 그대로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셨다.”
孟子曰:「禹惡旨酒而好善言。湯執中,立賢無方。文王視民如傷,望道而未之見。武王不泄邇,不忘遠。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其有不合者,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旦。」
6.『맹자』, 「이루 하(離婁 下)」
방몽(逄蒙)이 예(羿)에게서 활쏘기를 배웠는데 예의 기술을 다 익히고 나서 ‘천하에 오직 예만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예를 죽였다. 맹자께서 이를 평하셨다. “이는 또한 예에게도 책임이 있다. 노나라의 현인(賢人) 공명의(公明儀)는 ‘죄가 없을 듯하다.’고 했지만, 죄가 적다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는가? 정(鄭)나라 사람이 자탁유자(子濯孺子)로 하여금 위(衛)나라를 침략하게 하자, 위나라에서는 유공(庾公) 사(斯)로 하여금 그를 추격하게 하였다. 자탁유자가 말하기를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 없으니, 나는 죽었구나!’ 하고, 그의 마부에게 ‘나를 추격해오는 자가 누구인가?’ 하고 물었는데, 그 마부가 ‘유공 사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자탁유자가 ‘나는 살았다.’ 하고 말하였다. 그 마부가 말하기를 ‘유공 사는 위나라의 명사수인데, 선생께서 살았다고 하시니 무슨 말씀입니까?’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유공 사는 활쏘기를 윤공(尹公) 타(他)에게 배웠고, 윤공 타는 활쏘기를 나에게 배웠다. 그런데 윤공 타는 단정한 사람이니, 그가 사귄 벗도 반드시 단정할 것이다.’ 하였다. 유공 사가 도착하여 말하기를 ‘선생은 왜 활을 잡지 않습니까?’ 하자, 자탁유자는 ‘오늘 나는 병이 나서 활을 잡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하였다. 유공 사가 말하기를 ‘소인은 활쏘기를 윤공 타에게 배웠고, 윤공 타는 활쏘기를 선생에게 배웠으니, 저는 차마 선생의 기술을 가지고 선생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일은 나라의 일이니, 제가 감히 그만둘 수 없습니다.’ 하고는, 화살을 뽑아 수레바퀴에 두들겨 화살촉을 빼버린 다음 네 대의 화살을 쏜 뒤에 돌아갔다.”
逄蒙學射於羿,盡羿之道,思天下惟羿為愈己,於是殺羿。孟子曰:「是亦羿有罪焉。」公明儀曰:「宜若無罪焉。」曰:「薄乎云爾,惡得無罪?鄭人使子濯孺子侵衛,衛使庾公之斯追之。子濯孺子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吾死矣夫!』問其僕曰:『追我者誰也?』其僕曰:『庾公之斯也。』曰:『吾生矣。』其僕曰:『庾公之斯,衛之善射者也,夫子曰「吾生」,何謂也?』曰:『庾公之斯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我。夫尹公之他,端人也,其取友必端矣。』庾公之斯至,曰:『夫子何為不執弓?』曰:『今日我疾作,不可以執弓。』曰:『小人學射於尹公之他,尹公之他學射於夫子。我不忍以夫子之道反害夫子。雖然,今日之事,君事也,我不敢廢。』抽矢扣輪,去其金,發乘矢而後反。」
7.『맹자』, 「이루 하(離婁 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일반인과 다른 것은 그 마음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仁)을 마음에 보존하고, 예(禮)를 마음에 보존한다. 인자(仁者)는 남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자는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사랑해주고, 남을 공경하는 자는 남도 항상 그를 공경해준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함부로 대하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불인(不仁)하고, 내가 반드시 예가 없었는가 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일이 어찌 이른단 말인가?’라고 한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인하였고, 스스로 돌이켜보아 예가 있었는데도,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반성하기를 ‘내가 반드시 진실하지 못하였는가 보다.’ 한다. 스스로 반성해보아도 진실하였는데 그가 여전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군자는 말하기를 ‘이 사람은 망령된 자이다.’ 할 것이다. 이와 같다면 금수(禽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금수에게 또 무엇을 따지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終身之憂]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일시적인 걱정거리[一朝之患]는 없다. 군자가 종신토록 근심해야 할 것으로는 이러한 것이 있다. 순(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께서는 천하에 모범이 되셔서 후세에 전해지시거늘,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에 불과하니, 이러한 것이라면 근심할 만하다. 근심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순임금처럼 하면 될 뿐이다. 군자는 일시적으로 걱정하는 것이 없으니, 인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면 된다. 혹 하루아침의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군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孟子曰:「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仁者愛人,有禮者敬人。愛人者人恆愛之,敬人者人恆敬之。有人於此,其待我以橫逆,則君子必自反也:我必不仁也,必無禮也,此物奚宜至哉?其自反而仁矣,自反而有禮矣,其橫逆由是也,君子必自反也:我必不忠。自反而忠矣,其橫逆由是也,君子曰:『此亦妄人也已矣。如此則與禽獸奚擇哉?於禽獸又何難焉?』是故君子有終身之憂,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則有之:舜人也,我亦人也。舜為法於天下,可傳於後世,我由未免為鄉人也,是則可憂也。憂之如何?如舜而已矣。若夫君子所患則亡矣。非仁無為也,非禮無行也。如有一朝之患,則君子不患矣。」
8.『맹자』, 「만장 상(萬章 上)」
만장이 여쭈었다. “《시경》 〈남산(南山)〉에 이르기를 ‘아내를 얻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아뢰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 말대로라면 순처럼 하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도 않고 장가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장가들 수가 없었을 것이네. 남녀(男女)가 혼인하는 것은 사람의 큰 도리이니, 만일 순이 부모에게 아뢰었다면 장가드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아서 사람의 큰 도리를 폐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 부모를 원망하게 되었을 것이네. 이 때문에 순이 부모에게 아뢰지 않은 것이네.” “순이 아뢰지 않고 장가든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었습니다만, 요임금께서 순에게 딸을 시집보내시면서 순의 부모에게 고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요임금 또한 순의 부모에게 고하면 딸을 시집보내실 수 없을 것을 아셨기 때문이네.” “순의 부모가 순에게 곳간을 손질하게 하고는 순이 곳간으로 올라가자 사다리를 치운 다음 순의 아버지 고수(瞽瞍)가 곳간에 불을 질렀으며, 또 한 번은 순에게 우물을 치게 하고는 순이 나오려 하자 흙을 덮어 생매장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복동생인 상(象)은 순이 죽은 줄 알고 말하기를 ‘꾀를 내어 도군(都君)(순의 별칭)을 생매장시킨 것은 모두 나의 공로이니, 순의 소와 양은 부모의 것이고, 곡식창고도 부모의 것이고, 방패와 창은 내 것이고, 거문고도 내 것이고, 활도 내 것이고, 두 형수는 내 잠자리를 시중들게 하겠다.’ 하고는, 상이 순의 집에 들어가니, 순이 평상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습니다. 이에 놀란 상이 둘러대기를 ‘형님이 너무 그리워서 왔습니다.’ 하고는 부끄러워하였는데, 순은 말하기를 ‘너는 내게 와서 이 신하와 백성들을 다스리라.’ 하였다고 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순은 상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을 몰랐습니까?” “어찌 몰랐겠는가마는 동생인 상이 근심하면 자신도 근심하고, 상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한 것이네.”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쁜 척한 것입니까?” “아닐세. 옛날에 정(鄭)나라 대부 자산(子産)에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선물한 자가 있었는데, 자산이 연못 관리인을 시켜 그것을 못에서 기르게 하였네. 그런데 그가 물고기를 삶아먹어 버리고는 보고하기를 ‘처음에 고기를 놓아주자 비실비실 하더니, 조금 있자 팔팔해져서 유유히 갔습니다.’ 하니, 자산이 말하기를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였네. 이에 연못 관리인이 나와서 말하기를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먹었는데, 「제 살 곳을 얻었구나! 제 살 곳을 얻었구나!」 하더군.’ 하였네. 그러므로 군자는 그럴듯한 방법으로 속일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속이기는 어렵네. 저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찾아왔으므로 순이 진실로 믿고서 기뻐한 것이니, 어찌 거짓으로 기쁜 척하였겠는가?”
萬章問曰:「《詩》云:『娶妻如之何?必告父母。』信斯言也,宜莫如舜。舜之不告而娶,何也?」 孟子曰:「告則不得娶。男女居室,人之大倫也。如告,則廢人之大倫,以懟父母,是以不告也。」 萬章曰:「舜之不告而娶,則吾既得聞命矣;帝之妻舜而不告,何也?」 曰:「帝亦知告焉則不得妻也。」 萬章曰:「父母使舜完廩,捐階,瞽瞍焚廩。使浚井,出,從而揜之。象曰:『謨蓋都君咸我績。牛羊父母,倉廩父母,干戈朕,琴朕,弤朕,二嫂使治朕棲。』象往入舜宮,舜在床琴。象曰:『鬱陶思君爾。』忸怩。舜曰:『惟茲臣庶,汝其于予治。』不識舜不知象之將殺己與?」 曰:「奚而不知也?象憂亦憂,象喜亦喜。」 曰:「然則舜偽喜者與?」 曰:「否。昔者有饋生魚於鄭子產,子產使校人畜之池。校人烹之,反命曰:『始舍之圉圉焉,少則洋洋焉,攸然而逝。』子產曰『得其所哉!得其所哉!』校人出,曰:『孰謂子產智?予既烹而食之,曰:得其所哉?得其所哉。』故君子可欺以其方,難罔以非其道。彼以愛兄之道來,故誠信而喜之,奚偽焉?」
9.『맹자』, 「만장 상(萬章 上)」
만장이 여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윤이 요리하는 재주를 가지고 탕임금께 등용해주기를 요구하였다.’ 하니, 그러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그렇지 않네. 이윤은 유신(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요순의 도를 좋아하였네. 그리하여 의(義)가 아니고 도(道)가 아니면 천하를 녹으로 준다 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고, 말 4천 마리를 매어놓아도 보지 않았으며, 의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았고,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네. 탕임금께서 사람을 시켜 폐백을 보내어 이윤을 초빙하시자, 아무 욕심 없이 말하기를 ‘내가 탕임금의 초빙하는 폐백을 받아서 무엇하겠는가? 내가 밭이랑 가운데서 농사지으면서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하였네. 탕임금께서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초빙하시자, 이윽고 마음을 바꾸며 말하기를 ‘내가 밭이랑 가운데서 농사지으면서 이대로 요순의 도를 즐기는 것이, 내 어찌 이 임금으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훌륭한 임금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 어찌 이 백성으로 하여금 요순과 같은 훌륭한 임금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만 하겠으며, 내 어찌 그렇게 되는 것을 내 몸에서 직접 보는 것만 하겠는가? 하늘이 이 백성을 낼 때에 먼저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중에 아는 사람을 깨우치게 하고, 먼저 깨달은 자로 하여금 나중에 깨닫는 자를 깨우치게 하였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중에 먼저 깨달은 자이니, 내 장차 이 도로써 이 백성들을 깨우칠 것이다. 내가 이들을 깨우치지 않는다면 그 누가 깨우치겠는가?’ 하였네. 천하의 백성들 가운데 필부필부(匹夫匹婦)라도 요순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들을 도랑 가운데로 밀어넣은 것처럼 여겼네. 그가 천하의 중책을 자신의 임무로 여김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탕임금께 나아가 설득하여 하나라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제한 것이네. 나는 자신을 굽히고서 남을 바로잡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하물며 자신을 욕되게 하면서 천하를 바로잡는 것에 있어서이겠는가? 성인(聖人)의 행동은 똑같지 않아서, 혹은 멀리 떠나 은둔하기도 하고, 혹은 벼슬하여 군주 가까이 있기도 하며, 혹은 떠나기도 하고, 혹은 떠나지 않기도 하지만, 귀결되는 점은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일 뿐이네. 나는 요순의 도를 가지고 탕임금께 등용해주기를 요구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요리하는 재주를 가지고 그렇게 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네. 《서경》 〈이훈(伊訓)〉에 이르기를 ‘하늘의 벌이 폭군 걸왕의 목궁(牧宮)에 처음 내려진 것은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는 날에 처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 이윤이 박읍(亳邑)에서 일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였네.”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非其義也,非其道也,祿之以天下,弗顧也;繫馬千駟,弗視也。非其義也,非其道也,一介不以與人,一介不以取諸人,湯使人以幣聘之,囂囂然曰:『我何以湯之聘幣為哉?我豈若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哉?』湯三使往聘之,既而幡然改曰:『與我處畎畝之中,由是以樂堯舜之道,吾豈若使是君為堯舜之君哉?吾豈若使是民為堯舜之民哉?吾豈若於吾身親見之哉?天之生此民也,使先知覺後知,使先覺覺後覺也。予,天民之先覺者也;予將以斯道覺斯民也。非予覺之,而誰也?』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其自任以天下之重如此,故就湯而說之以伐夏救民。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況辱己以正天下者乎?聖人之行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矣。吾聞其以堯舜之道要湯,未聞以割烹也。伊訓曰:『天誅造攻自牧宮,朕載自亳。』」
윤리/도덕적 판단의 공통성(보편성)[편집 | 원본 편집]
10.『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맹자(孟子)께서 양(梁)나라 혜왕(惠王)을 만나셨는데, 왕이 말하였다.“노선생(老先生)께서 천 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무엇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시면, 대부(大夫)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할 것이니, 사(士)와 서인(庶人)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을 소유한 공경(公卿)의 집안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을 소유한 대부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가지며 천에서 백을 가지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의(義)를 하찮게 여기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질고서 자기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있지 않으며, 의(義)롭고서 자기 임금을 하찮게 여기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 할 따름이니,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王曰:「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乘之國弒其君者,必千乘之家;千乘之國弒其君者,必百乘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王亦曰仁義而已矣,何必曰利?」
11.『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우리 진(晉)나라가 천하에 막강하다는 사실은 노선생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과인(寡人)의 대에 이르러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에게 패전하여 맏아들이 전사하였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게 영토를 700리나 잃었으며,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게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전사한 자를 위해서 한번 설욕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땅이 사방 100리만 되어도 그것을 가지고 천하에 왕 노릇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일 인정(仁政)을 베풀어 형벌을 줄이시고 세금을 적게 거두신다면, 백성들이 여유가 있어서 밭을 깊이 갈고 김을 잘 맬 것이며, 장성한 자들이 여가를 이용하여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닦아서, 들어가서는 부형(父兄)을 섬기며 나가서는 어른과 상관을 섬길 것이니, 이렇다면 이들로 하여금 몽둥이를 만들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예리한 병기를 상대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저 적국의 군주가 자기 백성들의 농사철을 빼앗아 백성들로 하여금 밭 갈고 김을 매어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저들이 이처럼 그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그때 가서 정벌하신다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말에 ‘인자(仁者)에게는 대적할 사람이 없다[仁者無敵].’고 한 것이니, 왕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진(晉)나라가 분할되어 위(魏)나라‧한(韓)나라‧조(趙)나라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梁惠王曰:「晉國,天下莫強焉,叟之所知也。及寡人之身,東敗於齊,長子死焉;西喪地於秦七百里;南辱於楚。寡人恥之,願比死者一洒之,如之何則可?」 孟子對曰:「地方百里而可以王。王如施仁政於民,省刑罰,薄稅斂,深耕易耨。壯者以暇日修其孝悌忠信,入以事其父兄,出以事其長上,可使制梃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彼奪其民時,使不得耕耨以養其父母,父母凍餓,兄弟妻子離散。彼陷溺其民,王往而征之,夫誰與王敵?故曰:『仁者無敵。』王請勿疑!」
12.『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맹자께서 양나라 양왕(襄王)을 만나보시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임금 같지 않고, 그 앞에 가까이 나아가도 두려워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천하가 어떻게 안정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한곳으로 통일될 것입니다.’ 하였다. ‘누가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통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누가 그에게 귀의하겠습니까?’ 하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천하에 귀의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싹을 아십니까? 7, 8월 사이에 날씨가 가물면 벼싹이 시들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일으켜 좍좍 비를 내리면 벼싹이 생기 있게 일어납니다. 그 기세가 이와 같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임금 가운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일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그에게 귀의하는 것은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 누가 그 기세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孟子見梁襄王。出,語人曰:「望之不似人君,就之而不見所畏焉。卒然問曰:『天下惡乎定?』吾對曰:『定于一。』 『孰能一之?』對曰:『不嗜殺人者能一之。』 『孰能與之?』對曰:『天下莫不與也。王知夫苗乎?七八月之間旱,則苗槁矣。天油然作雲,沛然下雨,則苗浡然興之矣。其如是,孰能禦之?今夫天下之人牧,未有不嗜殺人者也,如有不嗜殺人者,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誠如是也,民歸之,由水之就下,沛然誰能禦之?』」
13.『맹자』, 「양혜왕 상(梁惠王 上)」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하여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무슨 연유로 내가 가능한 줄을 아십니까?” “제가 제나라 신하 호흘(胡齕)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께서 당(堂)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 이를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가 대답하기를 ‘종(鍾)의 틈을 바르는 데 쓰려고 끌고 갑니다.’ 하였습니다. 이에 왕께서 ‘소를 놓아주어라. 소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사지(死地)로 나아가는 것을 내 차마 볼 수가 없다.’ 하시자,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종의 틈을 바르는 것을 그만두오리까?’ 하니, 왕께서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느냐? 소 대신에 양(羊)으로 바꾸어 쓰라.’ 하셨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큰 것을 작은 것과 바꾸게 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소가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도 있을 것입니다만, 제나라가 아무리 좁고 작으나 내 어찌 소 한 마리를 아까워하겠습니까? 다만 죄 없이 벌벌 떨며 사지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소 대신 양으로 바꾸게 한 것입니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께서 재물을 아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과 바꾸셨으니, 저들이 어찌 왕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일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구별하셨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재물을 아껴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들이 나더러 재물을 아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려.”
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孟子對曰:「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無以,則王乎?」 曰:「德何如,則可以王矣?」 曰:「保民而王,莫之能禦也。」 曰:「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曰:「可。」 曰:「何由知吾可也?」 曰:「臣聞之胡齕曰,王坐於堂上,有牽牛而過堂下者,王見之,曰:『牛何之?』對曰:『將以釁鐘。』王曰:『舍之!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對曰:『然則廢釁鐘與?』曰:『何可廢也?以羊易之!』不識有諸?」 曰:「有之。」 曰:「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為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王曰:「然。誠有百姓者。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即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故以羊易之也。」 曰:「王無異於百姓之以王為愛也。以小易大,彼惡知之?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則牛羊何擇焉?」 王笑曰:「是誠何心哉?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宜乎百姓之謂我愛也。」
14.『맹자』, 「공손추 상(公孫丑 上)」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있다. 선왕(先王)께서는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곧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政治)를 하셨다.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근거는 이러하다. 지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惻隱)해하는 마음이 드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交分)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렇게 함으로써 고을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런 어린아이를 구하지 않았을 경우에 듣게 될 비난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해하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자신의 악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이며,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 단서인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仁義)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임금이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워나갈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는 미미하지만 끝에 가서는 기세가 대단할 것이다. 진실로 이것을 확충(擴充)시킨다면 온 천하도 보호할 수 있겠지만, 진실로 이것을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조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孟子曰:「人皆有不忍人之心。先王有不忍人之心,斯有不忍人之政矣。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治天下可運之掌上。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無羞惡之心,非人也;無辭讓之心,非人也;無是非之心,非人也。惻隱之心,仁之端也;羞惡之心,義之端也;辭讓之心,禮之端也;是非之心,智之端也。人之有是四端也,猶其有四體也。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自賊者也;謂其君不能者,賊其君者也。凡有四端於我者,知皆擴而充之矣,若火之始然,泉之始達。苟能充之,足以保四海;苟不充之,不足以事父母。」
=> 만장 상까지
오늘의 논의 주제(2023.9.13)[편집 | 원본 편집]
☞ 1. 딜레마 상황이 왜 생기는 걸까요?
☞ 2. 맹자가 제시한 윤리/도덕적 판단의 다양성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 3. 이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보편적, 공통적인 원칙 혹은 근거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