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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881년 봄, 유길준은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새로운 문물을 시찰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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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길준의 <서유견문> 서문<br/> | ||
+ | "일본 사람 가운데 견문이 넓고 학식이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그들의 의견을 듣고 또 새로 나온 책을 보며 되풀이하여 생각하는 동안, 그 사정을 살펴보고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상을 파헤쳐 보니, 그 제도나 법규가 서양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 무릇 일본이 유럽의 네덜란드와 거래를 튼 지는 이백여 년이 지났으나 그들을 오랑캐로 멸시하여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 후 일본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은 뒤부터 관계가 친밀해짐에 따라 시대적인 변화를 예측하고 그들의 장점을 취하며 여러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삼십 년 동안에 이와 같은 부강(富强)을 이룩할 수 있었다. |
2022년 3월 2일 (수) 17:31 판
-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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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1년 봄, 유길준은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새로운 문물을 시찰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감
유길준의 <서유견문> 서문
"일본 사람 가운데 견문이 넓고 학식이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그들의 의견을 듣고 또 새로 나온 책을 보며 되풀이하여 생각하는 동안, 그 사정을 살펴보고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상을 파헤쳐 보니, 그 제도나 법규가 서양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릇 일본이 유럽의 네덜란드와 거래를 튼 지는 이백여 년이 지났으나 그들을 오랑캐로 멸시하여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 후 일본은 서양의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은 뒤부터 관계가 친밀해짐에 따라 시대적인 변화를 예측하고 그들의 장점을 취하며 여러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삼십 년 동안에 이와 같은 부강(富强)을 이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