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과 강릉철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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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여겨, 그 날에 가서 보았다. 과연 일산이 쓰러지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 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여겨, 그 날에 가서 보았다. 과연 일산이 쓰러지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 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 ||
내 생각건대, 공은, 살아서는 왕실에 공(功)을 세워 삼국 통일의 성업(盛業)을 완성하였고, 죽어서는 수천 년이 되도록 오히려 이 백성에게 화복(禍福)을 내려서 그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니, 이는 진정 기록할 만한 것이기에 드디어 다음과 같이 찬(贊)한다.</br> | 내 생각건대, 공은, 살아서는 왕실에 공(功)을 세워 삼국 통일의 성업(盛業)을 완성하였고, 죽어서는 수천 년이 되도록 오히려 이 백성에게 화복(禍福)을 내려서 그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니, 이는 진정 기록할 만한 것이기에 드디어 다음과 같이 찬(贊)한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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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동녘에서 | 동해의 동녘에서 | ||
그 공 미칠 이 없네 | 그 공 미칠 이 없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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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드리는 분향 | 해마다 드리는 분향 | ||
누구라서 감히 소홀히 하랴 | 누구라서 감히 소홀히 하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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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style="color:#ff0000;">'''이러한 풍습은 아직도 전해져오고 있을까?'''</span> | ☞ <span style="color:#ff0000;">'''이러한 풍습은 아직도 전해져오고 있을까?'''</sp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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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52 여전히 전해내려오는 대관령 산신제] | *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52 여전히 전해내려오는 대관령 산신제] | ||
+ | * 참고: 김유신 장군과 강릉과의 인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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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재 강릉향교가 위치해 있는 곳은 화부산(花浮山)임</br> | ||
+ | ○ 화부산(花浮山)은 예로부터 역사적인 유적지였던 것으로 보임. 이 화부산은 봄에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벚꽃 명소이기도 함</br> | ||
+ | ○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장수인 김유신(595~673) 장군을 모신 사당이었던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pDGmvWX95WD2Wc3yK3sqLYBYAqHx45GjdTPaeg8tO7C8dgtjbExQgrYlpryTeJAD.cpawas2_servlet_engine1?pageNo=1_1_2_0&ccbaCpno=2113200570000 화부산사]가 위치해 있었음</br> | ||
+ | ○ 지금은 강릉역 확장(1963)으로 교동 임영고개 마루에 위치해 있음</br> | ||
+ | ○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강릉이 신라의 변방이었던 시기에 말갈족들의 침입으로 장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여 말갈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으므로 이를 감사히 여겨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고 함</br> | ||
[[분류: 유가철학]] | [[분류: 유가철학]] |
2022년 11월 16일 (수) 10:37 판
한국 문집 속 대관령
☞ 대관령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무엇이 생각나나요?
-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14권, <대령산신찬(大嶺山神贊)>
☞ 원문 출처: 한국고전종합DB
계묘년(1603, 선조36) 여름이었다. 나는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에 있었는데, 고을 사람들이 5월 초하룻날에 대령신(大嶺神)을 맞이한다. 하기에, 그 연유를 수리(首吏: 이방)에게 물으니, 수리가 이렇게 말하였다. “대령신이란 바로 신라 대장군 김유신(金庾信)입니다. 공이 젊었을 때 명주에서 공부하였는데, 산신(山神)이 검술을 가르쳐 주었고, 명주 남쪽 선지사(禪智寺)에서 칼을 주조하였는데, 90일 만에 불 속에서 꺼내니 그 빛은 햇빛을 무색하게 할 만큼 번쩍거렸답니다. 공이 이것을 차고, 성내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오곤 하였는데, 끝내 이 칼로 고구려를 쳐부수고 백제를 평정하였답니다. 그러다가 죽어서는 대령의 산신이 되어 지금도 신령스러운 이적이 있기에, 고을 사람들이 해마다 5월 초하루에, 번개(旛蓋)와 향화(香花)를 갖추어 대령에서 맞아다가 명주 부사(溟州府司)에 모신답니다. 그리하여 닷새 되는 날, 갖은 놀이[雜戲]로 신(神)을 기쁘게 해 드린답니다. 신이 기뻐하면 하루 종일 일산[蓋]이 쓰러지지 않아 그 해는 풍년이 들고, 신이 화를 내면 일산이 쓰러져, 그 해는 반드시 풍재(風災)나 한재(旱災)가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여겨, 그 날에 가서 보았다. 과연 일산이 쓰러지지 않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 치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내 생각건대, 공은, 살아서는 왕실에 공(功)을 세워 삼국 통일의 성업(盛業)을 완성하였고, 죽어서는 수천 년이 되도록 오히려 이 백성에게 화복(禍福)을 내려서 그 신령스러움을 나타내니, 이는 진정 기록할 만한 것이기에 드디어 다음과 같이 찬(贊)한다.
... 동해의 동녘에서 그 공 미칠 이 없네 웅장한 풍도에 영특한 기개 이제 수천 년이 되었건만 대령산 꼭대기에서 아직도 제사 받아 해마다 드리는 분향 누구라서 감히 소홀히 하랴 ...
☞ 이러한 풍습은 아직도 전해져오고 있을까?
- 참고: 김유신 장군과 강릉과의 인연
○ 현재 강릉향교가 위치해 있는 곳은 화부산(花浮山)임
○ 화부산(花浮山)은 예로부터 역사적인 유적지였던 것으로 보임. 이 화부산은 봄에 온통 벚꽃으로 뒤덮여 벚꽃 명소이기도 함
○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장수인 김유신(595~673) 장군을 모신 사당이었던 화부산사가 위치해 있었음
○ 지금은 강릉역 확장(1963)으로 교동 임영고개 마루에 위치해 있음
○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강릉이 신라의 변방이었던 시기에 말갈족들의 침입으로 장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여 말갈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으므로 이를 감사히 여겨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