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둔괘, 위기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 여러분이 주역을 쓰는 사람이라면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건괘와 곤괘 다음에 어떤 괘를 놓으시겠어요?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다음에 나오는 둔괘(屯卦)
- '둔괘(屯卦)'를 '준괘'로 읽기도 함
둔괘 괘상
- 참고: 8괘의 상징
- 둔괘는 하늘과 땅이 처음 만나 요란하게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붓는 모습임
- 이를 『주역』에서 “양과 음이 처음 만나 어려움이 생겨났다”라고 말하기도 했음. 하지만 이 처음의 어려움은 생명력을 틔워내는 힘이 됨
둔괘의 괘 이름의 뜻
1. 둔의 첫 번재 의미: 어려움
- 최초의 글자풀이책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둔(屯)의 의미를 “초목이 처음 나와서 어려운 상황을 본뜬 것이다. 屮이 一을 뚫은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一은 땅이다. 끝이 굽어 있는 것이다. 『주역』에 ‘강(剛)과 유(柔)가 처음 교제해서 어려움이 생겼다.’라고 했다.(屯, 難也. 象艸木之初生, 屯然而難. 从屮貫一. 一, 地也. 尾曲. 易 曰 ‘屯, 剛柔始交而難生.’)”라고 했음. 여기에서 屯자에 대해 초목이 땅을 뚫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설명하고 있음. 새싹이 땅 속에서 땅을 뚫고 나오듯이 처음 나오는 모습이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땅을 뚫고 나오느라 똑바로 나오지 못하고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나오는 상황을 형상화한 글자로 보고 있음
- 둔괘에서의 둔(屯)자의 의미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 땅을 뜻하는 곤괘가 이제 둔괘에서 서로 만나 새로운 생명현상, 새로운 일이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새싹이 막 땅을 뚫고 나오는 아픔과 어려움을 겪듯이 어려움이 생겨나게 된 것임
- 하늘과 땅의 양극성 속에서 둔괘의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천지간(天地間)에 무한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변화무쌍한 삶이 나타나게 됨
2. 둔의 두 번째 의미: 가득함
- 『주역』 괘의 순서를 논리적이고 정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서괘전(序卦傳)」에 따르면, “천지가 있게 된 후에 만물이 생겨난다. 천지사이에 가득 찬 것은 만물이기 때문에 둔괘로 건‧곤괘 다음을 이어받았다. 둔이라는 것은 가득참이다. 둔이라는 것은 만물이 처음 생겨남이다(有天地, 然後萬物生焉. 盈天地之間者唯萬物, 故受之以屯. 屯者, 盈也. 屯者, 物之始生也).”라고 했음
- 여기에서 둔괘가 지닌 가득참의 의미는 이제 막 생겨난 만물들로 천지사이가 가득찬다는 것을 의미
둔괘 읽기
☞ 시작하는 어려움의 때에 가져야 할 기본 기조는 무엇일까요?
둔괘 괘사
屯(둔)은 元亨(원형)하고 利貞(이정)하니 勿用有攸往(물용유유왕)이요 利建侯(이건후)하니라.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갈 바를 두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 원형리정(元亨利貞)
○ 건괘 괘사의 원형리정과 둔괘 괘사의 원형리정과의 차이에 대해 공영달(『주역정의(周易正義)』)은 건괘의 4덕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는데 둔괘 괘사의 원형리정의 경우 원형리정을 위한 일정한 조건이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건괘와 다르다고 보았음
☞ 동양고전종합DB 『주역정의(周易正義)』번역문
○ 즉 음양이 처음 교제해서 어려움이 만들어졌고 어려움으로 인해서 사물이 비로소 크게 형통하게 되기 때문에 “원형(元亨)”이라고 한 것이라고 보았음. 또한 만물이 크게 형통하면 이익을 얻어서 바르게 되기 때문에 “이정(利貞)”이라고 보았음
○ 건괘 괘사에는 원형리정만 있는데 반해 둔괘 괘사에는 “갈 바를 두지 말아야 하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라는 일정한 이로움의 조건과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건괘와 다르다고 보았음
○ 이처럼 둔괘의 원형리정은 형이상적이고 고원한 원리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보다는 천지 사이, 천지간(天地間)에서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될 때에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일정한 조건과 한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원형리정에 관한 현장적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임
- 참고: 『주역정의(周易正義)』주석서의 기초가 되는 왕필, 공영달은 누구인가?
○ 왕필(王弼, 226~249)
- 위나라 시대에 요절한 천재로 알려진 철학자. 열 살 때부터 『도덕경』을 읽었고 열여섯에 노자주를 내었으며 스물세 살에 죽기까지 논어와 『주역』까지 풀이했음. 특히 『주역』을 의리역적으로 해석한 역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임
- 왕필은 『주역』이 정치 철학을 강론한 책이라고 보았음. 한나라 상수학과 미신을 배척하고 도가적 사유에 근거하여 역을 해석하는 새로운 풍조를 열었음
- 득의망상(得意忘象): 『역』을 논할 때 ‘의(意)’를 얻는 일이 가장 중요함. 의(意)를 얻음은 상(象)을 잊음에 있음
“올무는 토끼를 잡는 것이 목적이므로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잊어버리고,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므로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음과 같다. 그러한즉 언어란 상(象)의 올무이고 상(象)이란 의(意)의 통발이다. 그러므로 언어에 집착하면 상(象)을 얻지 못하고, 상에 집착하면 의를 얻지 못한다.“ –왕필의 『장자』 「외물」편 해석
○ 주역 해석의 두 가지 갈래 =
☞ 廖名春‧康學偉‧梁韋弦 지음, 심경호 옮김, 『주역철학사』, 예문서원, 2009, 163~171쪽
=> 이 두 가지가 가능한 이유: 이미 주역 안에 이 두 가지 모두가 있음. 상(象)과 숫자로 미래를 예측하는 주역의 과학, 이것을 철학적인 원리로 이해하는 주역의 인문학
○ 공영달(孔穎達: 574~648)
- 당나라 유학자. 자(字)는 중달(仲達)임
- 당나라 태종의 명으로 오경을 정리했음. 당시 태종은 유교의 성대함을 과시하고 여러 유교학설을 통일하겠다는 생각에서 유학자들을 동원하여 역경(易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 5경을 정리하게 함
- 공영달은 『주역』을 정리한 『주역정의(周易正義)』를 정리하면서 왕필, 한강백 주를 채택함
- 물용유유왕(勿用有攸往) 이건후(利建侯)
○ 『주역』 괘사에서는 어떤 것을 추진하거나 진척하는 것을 비유할 때 “갈 바를 두다(有攸往)”이라고 표현하곤 함
○ 둔괘는 험난함에 처해 있고 세상 일이 형통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때를 상징함. 공영달은 험난한 시대에 세상의 도가 처음 열려서 만물이 아직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제후를 세움이 이로워서 만물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사의 의미로 풀이했음
○ 둔괘의 때는 험난한 시대를 상징하며 섣불리 혼자 시대를 구제하기 위해 나서기 보다는 현명한 조력자와 함께 해야 함을 의미하는 구절로 이해할 수 있음
둔괘 「단전」
彖曰(단왈) 屯(둔)은 剛柔始交而難生(강유시교이난생)하며 動乎險中(동호험중)하니 大亨貞(대형정)이니라. 「단전(彖傳)」에 말했다. “둔은 강과 유가 처음 교제하여 어려움이 생겼으며 험한 가운데에서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다.
☞ 왜 험한 가운데 움직임인다고 할까요? 드디어 8괘에 기반한 해석의 묘미가 시작됩니다!
- 動乎險中(동호험중): 팔괘의 상징에 따르면 둔괘의 상괘인 감괘는 험함, 하괘인 진괘는 움직임을 상징함
- 고대인의 눈으로 보는 우레
○ 우레는 고대로부터 하늘과 땅, 인간과 신과 교합하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임. 그 한 예로 한고조 유방의 모친인 유온(劉媼)의 이야기를 들 수 있음
○ 『논형』 「뇌허(雷虛)」에 “우레와 번개가 치는 날에는 하늘이 꽉 막히게 된다.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모친인 유온(劉媼)이 큰 못가 방죽에서 쉬다가 꿈에 신(神)과 교합했는데, 바로 이 때 우레와 번개가 치면서 어두컴컴해졌다.”라고 했음. 여기에서 우레와 번개 치는 날은 하늘이 꽉 막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순간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유온의 사례를 들어 천신(天神)과 땅위의 인간이 교합하는 사례를 언급했음
○ 마찬가지로 둔괘에서 언급되고 있는 우레 또한 하늘과 땅이 비로소 만나 교제하는 상징으로 묘사되고 있음
☞ 여전히 신비로운 기상현상들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주역』속 자연은 일상을 신비의 공간으로 만드는 자연의 신비를 느게 한다!
雷雨之動(뇌우지동)이 滿盈(영만)하여 天造草昧(천조초매)에는 宜建侯(의건후)요 而不寧(이불녕)이니라. 우레와 비의 움직임이 가득하여 천지의 조화가 시작되는 때에 어지럽고 어두울 때에는 제후를 세워야 하고 안일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 天造草昧(천조초매)
○ 둔괘는 천지의 조화(造化)가 시작되는 때로, 만물을 만드는 처음에는 어두운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초매”라고 한 것임. 여기에서 “초매(草昧)”는 어지럽고 어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지의 조화가 시작되는 처음에는 어지럽고 어두운 데에서 시작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음 (왕필)
- 참고: 제강(帝江) 창세신화
☞ 그림출처: 한국일보
○ 중국 창세 신화 중 하나에서, 혼돈을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체로 표현함
○ 제강(帝江)은 눈, 코, 귀, 입 등 얼굴이 하나도 없는 새로, 혼돈 속의 어두운 상황처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답답한 모양임
○ 남쪽 바다를 다스리는 숙과 북쪽 바다를 다스리는 홀이 가끔 혼돈이 사는 곳에 놀러갔는데 그 때마다 혼돈이 손님 대접을 잘해서 혼돈에게 7개의 구멍을 뚫어줌. 그런데 이 혼돈은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게 됨
둔괘 「상전」
象曰(상왈) 雲雷屯(운뢰둔)이니 君子以(군자이)하여 經綸(경륜)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했다.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를 이를 본받아 경륜한다.”
- 운뢰둔(雲雷屯): 여기에서 운(雲)은 상괘의 감괘의 상징임. 8괘의 감괘는 물을 상징하지만 상괘의 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구름의 상으로 읽혀진 것임
- 경륜(經綸): ‘경(經)’자에 대해 『설문해자』에 실을 짜는 것(織也. 从糸巠聲)이라고 보았고 ‘륜(綸)’자에 대해 “청색 실을 꼬아서 끈을 만드는 것(靑絲綬也)”이라고 보았음. 글자적 의미는 실을 삼는다는 것이지만 세상을 통치하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음
둔괘 효사, 「상전」
初九(초구)는 磐桓(반환)이니 利居貞(이거정)하며 利建侯(이건후)하니라. 초구는 머뭇거림이니 바름에 거함이 이로우며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象曰(상왈) 雖磐桓(수반환)하나 志行正也(지행정야)며 以貴下賤(이귀하천)하니 大得民也(대득민야)로다. 「상전(象傳)」에 말했다. “비록 머뭇거리지만 뜻은 정도(正道)를 행하려고 하며 존귀한 사람으로 천한 이에게 낮추니 민심을 크게 얻을 것이다.”
- 반환(磐桓)
○ 어려움이 시작되는 둔괘의 초기에 처해 있어서 움직이게 되면 어려움이 생겨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임. 초효가 속한 하괘는 진괘로 움직이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둔괘의 전체적인 상황이 어려운 상황이고 초효가 속한 자리는 어려움이 시작되는 자리와 때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
- 이거정(利居貞)
○ 초구효는 양의 자리에 양효가 와 있기 때문에 정(正)임. 그래서 초구 「상전」에서는 초구 효사의 바름에 거한다는 의미를 정도를 행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보았음. 초구효가 함부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구차하게 편안함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바름을 지켜 행하는 데 뜻을 두고 있기 때문임 (공영달)
○ 초구효는 주저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바름을 지키고 행할 수 있는 상황임
- 이귀하천(以貴下賤)
○ 『역전』에서 양은 귀함 & 군주, 음은 천함 & 백성으로 풀이되기도 함. 초구의 양이 세 음 아래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귀함으로 천한 이들에게 낮추는 상황으로 보기도 함(공영달)
○ 또는 군주가 백성들에게 낮추기 때문에 민심을 얻게 되는 상황으로 풀이하기도 함(고형)
○ 고형(1900~1986)은 현대 고문자 학자이자 고대 문화사가임. 청화(淸華)대학 연구원을 졸업하고, 무한대학, 산동대학 등 여러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음. 경학, 사학과 금석, 갑골문자에 조예가 깊었으며, 『시경』, 『상서』, 『주역』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음
○ 고형은 『주역』의 괘명, 괘사, 효사 및 점법을 고증하면서 팔괘는 원시 사회 시기에 출현한 것이며, 64괘는 늦어도 은대에 출현한 것이라고 여겼음. 서주 초기에 그 이전 시대부터 내려온 점법 혹은 점책을 바탕으로 쓴 책이 『주역』이며, 동주에 이르러 이 『주역』을 해설하여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의 변화를 상징한 것이 『역전』이라고 보았음. 역학 저서에는 『주역고경통설周易古經通說』, 『주역고경금주』(1940), 『주역잡론周易雜論』(1962), 『주역대전금주』(1970)가 있음
六二(육이)는 屯如邅如(둔여전여)하며 乘馬班如(승마반여)하니 匪寇(비구)면 婚媾(혼구)리니 女子貞(여자정)하여 不字(부자)라가 十年(십년)에야 乃字(내자)로다. 육이는 어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타고 빙빙 돌며 배회하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상대인 것이니 여자가 올바름을 지켜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에 이르러 이내 생육할 것이다.
- 전여(邅如)
○ 『설문해자』 단옥재 주에서는 마융(馬融)의 말을 인용하여 ‘전(邅)’자를 “어렵게 가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難行不進之皃)”이라고 풀이했음. 어기사인 여(如)자가 덧붙어서 ‘전여(邅如)’는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음
- 반여(班如)
○ ‘반(班)’은 빙빙 돌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임 (공영달) 어기사 여(如)자가 붙어 말에 올라탔지만 빙빙 배회하고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임
○ 육이는 구오효와 정응(正應)관계임. 육오에게 나아가려고 하지만 어려운 때라서 아직 어려운 상황임. 그래서 빙빙 돌면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