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의 인간본성론: 맹자와 순자

An_SW
Esang21c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3월 28일 (화) 12:3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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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성(性)

 1. 孟子道性善(맹자도성선)하시되 言必稱堯舜(언필칭요순)이러시다 ...  成覸(성간)이 謂齊景公曰(위제경공왈) 彼丈夫也(피장부야)며 我丈夫也(아장부야)니 吾何畏彼哉(오하외피재)리오하며 顔淵曰舜何人也(안연왈순하인야)며 予何人也(여하인야)오 有爲者亦若是(유위자역약시)라 하며
   맹자가 사람의 본성이 선(善)함을 말했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예로 들었다. 성간(成覸)이 제경공(齊景公)에게 말했다. "저 성현(聖賢) 들도 장부(丈夫)이며 나도 장부이니, 내 어찌 저 성현들을 두려워하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했다. "순(舜)임금은 어떠한 분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하는 자는 또한 이 순(舜)임금과 같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 上)」)


 2. 孟子曰(맹자왈) 天下之言性也(천하지언성야)는 則故而己矣(즉고이이의)니 故者(고자)는 以利爲本(이리위본)이니라. 所惡於智者(소오어지자)는 爲其鑿也(위기착야)니 如智者若禹之行水也(여지자약우지행수야)면 則無惡於智矣(즉무오어지의)리라 禹之行水也(우지행수야)는 行其所無事也(행기소무사)시니 如智者亦行其所無事(여지자역행기소무사)면 則智亦大矣(즉지역대의)리라 
  맹자가 말했다. “천하에서 성(性)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미 드러난 자취를 따질 뿐이니, 이미 드러난 자취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형세를 근본으로 삼는다. 지혜로운 자를 미워하는 까닭은 천착(穿鑿)하기 때문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우왕(禹王)이 물을 소통시킨 것처럼 하면, 지혜로움을 미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왕이 물을 소통시키신 것은 자연의 형세를 따라 아무 탈이 없는 대로[무사(無事)] 행하신 것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또한 자연의 형세를 따라 아무 탈이 없는 대로 행한다면 그 지혜가 또한 클 것이다."

=> 여기에서 "以利爲本(이리위본)"의 이로울 '리(利)'를 주희는 순하다, 따르다라는 뜻의 순(順)'과 같은 뜻으로 보았음


 3. 告子曰(고자왈) 性(성)은 猶湍水也(유단수야)라 決諸東方則東流(결저동방즉동류)하고 決諸西方則西流(결저서방즉서류)하나니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인성지무분어선불선야)는 猶水之無分於東西也(유수지무분어동서야)니라 
 고자가 말했다. “사람의 성(性)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성이 선(善)과 불선(不善)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孟子曰(맹자왈) 水信無分於東西(수신무분어동서)어니와 無分於上下乎(무분어상하호)아 人性之善也(인성지선야) 猶水之就下也(유수지취하야)니 人無有不善(인무유불선)하며 水無有不下(수무유불하)니라 今夫水(금부수)를 搏而躍之(박이약지)면 可使過(가사과)이며 激而行之(격이행지)면 可使在山(가사재산)이어니와 是豈水之性哉(시기수지성재)리오 其勢則然也(기세즉연야)니 人之可使爲不善(인지가사위불선)이 其性(기성)이 亦猶是也(역유시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물은 진실로 동서(東西)의 구분이 없지만, 상하(上下)의 구분도 없습니까? 사람의 성이 선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으니,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물을 쳐서 튀어 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보다 높이 올라가게 할 수 있고, 물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게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외부에서 가하는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사람이 불선을 하게 되는 것도 이처럼 그 성이 외부의 힘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맹자』 「고자 상(告子 上)」)


 4. 告子曰(고자왈) 生之謂性(생지위성)이니라  
 고자가 말했다.“생리적인 본능을 성(性)이라고 합니다.”
孟子曰(맹자왈) 生之謂性也(생지위성야)는 猶白之謂白與(유백지위백여)아 曰然(왈연)하다 白羽之白也(백우지백야)가 猶白雪之白(유백설지백)이며 白雪之白(백설지백)이 猶白玉之白與(우백옥지백여)아 曰然(왈연)하다 맹자께서 말했다. “생리적인 본능을 성이라고 하는 것은,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흰 깃털의 흰 것이 흰 눈의 흰 것과 같고, 흰 눈의 흰 것이 흰 옥(玉)의 흰 것과 같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然則犬之性(연즉견지성)이 猶牛之性(유우지성)이며 牛之性(우지성)이 猶人之性與(유인지성여)아 孟子又言(맹자우언) 若果如此(약과여차)면 則犬牛與人(즉견우여인)이 皆有知覺(개유지각)하고 皆能運動(개능운동)하니 其性(기성)이 皆無以異矣(개무이이의)라 하시니 於是(어시)에 告子自知其說之非(고자자지기설지비)하고 而不能對也(이불능대야)하니라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단 말입니까?”맹자가 또 말했다. “만일 과연 이와 같다면 개와 소와 사람이 모두 지각이 있으며, 모두 운동할 수 있으니, 그 성(性)이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에 고자(告子)가 스스로 그 말이 틀렸음을 알고서 대답하지 못했다. (『맹자』 「고자 상(告子 上)」)


 5. 公都子曰(공도자왈) 告子曰(고자왈) 性(성)은 無善無不善也(무선무불선야)라 하고  或曰(혹왈) 性(성)은 可以爲善(가이위선)이며 可以爲不善(가이위불선)이니 是故(시고)로 文武興(문무흥)하면 則民好善(즉민호선)하고 幽興(유흥)하면 則民好暴(즉민호포)라 하고 今曰(금왈) 性善(성선)이라 하시니 然則彼皆非與(연즉피개비여)잇가 
 공도자가 말했다. “고자는 ‘사람의 성(性)은 선함도 없고 불선함도 없다.’ 하였습니다. 혹자는 ‘성이 선한 이도 있고 성이 불선한 이도 있으니, 이 때문에 요(堯)를 임금으로 삼고서도 상(象) 같은 동생이 있었고, 고수(瞽瞍)를 아버지로 삼고서도 순(舜) 같은 자식이 있었으며, 주(紂)를 형의 아들이자 또 임금으로 삼고서도 미자(微子) 계(啓)와 왕자(王子) 비간(比干)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께서는 성이 선하다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저들은 모두 틀린 것입니까?”
孟子曰(맹자왈) 乃若其情則可以爲善矣(내약기정즉가이위선의)니 乃所謂善也(내소위선야)니라 若夫爲不善(약부위불선)은 非才之罪也(비재지죄야)니라 맹자가 말했다. “그 타고난 자질인 정(情)은 선하다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이른바 선하다는 것이네. 불선을 하는 것은 타고난 자질의 죄가 아닐세.
惻隱之心(측은지심)을 人皆有之(인개유지)하며 羞惡之心(수오지심)을 人皆有之(인개유지)하며 恭敬之心(공경지심)을 人皆有之(인개유지)하며 是非之心(시비지심)을 人皆有之(인개유지)하니 惻隱之心(측은지심)은 仁也(인야)요 羞惡之心(수오지심)은 義也(의야)요 恭敬之心(공경지심)은 禮也(예야)요 是非之心(시비지심)은 智也(지야)니 仁義禮智非由外我也(인의예지비유외아야)라 我固有之也(아고유지야)언마는 弗思耳矣(불사이의)라 故(고)로 曰求則得之(왈구즉득지)하고 舍則失之(사즉실지)라 하니 或相倍而無算者(혹상배이무산자)는 不能盡其才者也(불능진기재자야)니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인 공경지심(恭敬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으니, 측은지심은 인(仁)이요, 수오지심은 의(義)요, 공경지심은 예(禮)요, 시비지심은 지(智)일세. 인(仁)‧의(義)‧예(禮)‧지(智)는 밖으로부터 나를 녹여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네. 그러므로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고 하는 것이니, 선악의 차이가 서로 배(倍)가 되고 다섯 배가 되기도 하여 헤아릴 수 없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자질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네. (『맹자』 「고자 상(告子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