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에세이 묵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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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고 이익을 나누자[편집 | 원본 편집]

  • 묵가 철학의 핵심: 겸애와 교리

○ 겸애(兼愛): 서로 사랑하자는 뜻의 정치적 평등의 요구, 무차별적 사랑
○ 교리: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경제적 평등의 요구


 ☞질문: 왜 묵가는 겸애를 중시했을까?


  • 묵가가 파악한 당시 혼란의 원인

○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못살게 굴고, 많은 수를 가지고 적은 수를 괴롭히고,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부리고, 교활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이용해 먹는 것을 혼란의 원인이라고 보았음

 ☞질문: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을까?

○ 혼란의 궁극적인 원인을 차별적인 사랑 때문이라고 보았음
○ 당시 전쟁의 실상
(천병돈, <묵자 반전론의 이론적 근거와 한계>, <<인문학연구>> 17권,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0)
- 과거의 전쟁은 대부분 봄이나 가을에 일어났음. 겨울에는 군사를 동원하자니 추위 때문에 어려웠고 여름에는 장마와 질병, 더위 때문에 군사 동원이 어려웠음. 그래서 계절적으로 봄이나 가을에 군사를 동원했음
- 하지만 봄은 농번기임. 봄에 군사를 동원하면 밭 갈고 씨 뿌리는 농사를 그르치게 되고, 가을에 군사를 동원하면 추수를 망치게 됨
- 묵자 당시의 농경사회에서 농사는 매우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음. 더구나 농사는 때가 있음. 씨 뿌릴 때 씨를 뿌려야 하고 거두어 드릴 때 거두어 드려야 함. 때를 놓쳐 농사를 망치게 되면 백성들은 굶주리고 헐벗어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게 됨
- 묵자는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고 했음


 ☞질문: 농사를 짓고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이러한 백성들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 이에 대한 묵자의 답변

 "단지 전쟁의 승리로 인해 얻는 왕, 제후들 개인의 명예와 경제적 이익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육체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가?" -<<묵자>> <비공>


  •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묵자가 제시한 사고의 전환

(천병돈, <묵자 반전론의 이론적 근거와 한계>, <<인문학연구>> 17권,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0)
○ 묵자는 '별(別: 자기만 생각하는 것)'과 '겸(兼: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이롭게 하는 것)'을 구분했음
○ 묵자에게 '별(別)'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임
○ <남과 자신을 구별하고 자신만을 귀하게 여기는 사고의 문제점>

 별사(別士: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어찌 나의 친구의 몸을 위하여 나의 몸을 위하는 것같이 하고, 나의 친구의 부모님을 위하기를 나의 부모님을 위하는 것같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친구를 만나면 굶주리고 있어도 먹여주지 않고 헐벗고 있어도 옷을 입혀주지 않으며 병이 들어도 시중들고 간호하지 않으며 사람이 죽어도 장사지내주지 않는다. -<<묵자>> <겸애>
 ☞질문: 근데 이게 그렇게 잘못됐나? 인간으로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질문: 문제는 이런 사람이 임금이 되면?
 그래서 별군(別君: 자기만을 생각하는 임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어찌 만백성들의 몸을 내 몸과 같이 여길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서에 너무나 어긋나는 것이다." ... 그래서 굶주린 백성들을 보면 먹을 것을 주지 않고 헐벗고 있어도 옷을 주지 못하며 병든 사람을 보아도 쉬고 요양하도록 하지 않으며 사람이 죽은 것을 보아도 묻어주지 않는다. 별군의 말은 이러하고, 행동 또한 이러하다. -<<묵자>> <겸애>

=> 별(別): 자신과 타인을 분별하고 차별하는 사고

○ 타인을 사랑하는 이타적인 사람의 특성인 '겸(兼)'(<-> 별(別))의 중요성

 겸사(<->별사)의 말은 그렇지 않고 행동 또한 그렇지 않다. ... 친구의 몸을 위하기를 자신의 몸을 위하는 것같이 하고, 친구의 부모님을 위하기를 자신의 부모님을 위하는 것같이 한다. ... 굶주리고 있으면 먹여주고, 헐벗고 있으면 옷을 입혀주며, 병을 앓고 있으면 시중하고 간호해 주며, 사람이 죽으면 장사지내준다. -<<묵자>> <겸애>
 겸군(<->별군)의 말은 그렇지 않으며 행동 역시 그렇지 않다. 나는 "현명한 임금이 되려면 반드시 백성들의 몸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몸은 나중에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만 현명한 임금이 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만백성을 되돌아보고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먹여주고, 헐벗는 자에게는 옷을 입혀주고, 병든 사람은 돌봐주고, 사람이 죽으면 잘 장사지내준다. -<<묵자>> <겸애>

=> 겸(兼): 너와 나 구별 없이 함께 아우르는 사고


반전 평화론[편집 | 원본 편집]

 ☞질문: 전쟁은 왜 하면 안되나요?

○ 인간의 이기심: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은 이기심에서 왔음

○ 차별적인 사랑: 이 이기심은 차별적인 사랑을 낳게 됨. 차별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 자기 집안,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남
=> 무차별적 사랑에 기초한 전쟁반대론 주장. 묵자의 전쟁 반대론은 겸애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주장이었음
=> 이를 위해 묵가 집단은 전쟁에 맞서는 방어 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방어를 위한 무기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했음


 ☞질문: 어떤가요? 설득이 되나요?


  • 이익에 대한 관점의 전환

(천병돈, <묵자 반전론의 이론적 근거와 한계>, <<인문학연구>> 17권,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0)

 "비록 네 다섯 개 나라가 전쟁으로 이득을 보지만 그래도 정도(正道)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가령 여기에 의사가 있는데 약을 조제하여 천하의 병든 모든 사람에게 처방했다고 하자. 만 명이 이 약을 먹고 네 다섯 명이 이득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 약은 영험한 약이라고 할 수 없다." -<<묵자>> <비공>
여기에서 진정한 이익은 뭔가요? 이런 이익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어떠할까요?

○ 명약이란 그 약을 먹은 모든 환자의 병이 치유되었을 때 비로소 '명약'이라고 할 수 있듯이 정도(正道)란 4~5 국가에만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라야 함
=> 묵자가 추구했던 이익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득임
=> 묵자는 타인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고 보았음
=>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인 이득의 근거로 하늘을 들었음. 하늘의 운행은 사사로움 없이 광범위하고, 만물을 위해 후하게 베풀면서도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지 않으며, 밝은 광채는 쇠퇴하지 않고 오래 지속됨.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되기를 바라지 서로 미워하고 서로 해치는 것을 바라지 않음

 내가 하늘이 백성들을 깊게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은 여러 방면이 있는데
 말하자면 하늘이 해와 달과 별들을 분리하여 백성들을 밝게 하고 인도하였으며
 사계절인 춘하추동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생활의 법칙으로 삼게 하였으며
 눈, 서리, 비, 이슬을 내려 오곡과 삼을 자라게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재물과 이익을 얻도록 해주었으며...
 제왕, 대신, 제후, 백을 설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현명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포악한 사람들에게는 벌을 주도록 하였으며...
 지금 하늘은 천하의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고 만물을 육성하여 그들에게 이롭도록 해 준다.
 터럭의 끝 같은 작은 것이라도 하늘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으니
 백성들이 하늘로부터 얻는 이익은 대단히 많다고 할 수 있다.
-<<묵자>> <천지>

꿈으로 남은 묵자 철학[편집 | 원본 편집]

○ 몇몇 강대국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되면서 약소국을 지키던 묵가의 영향력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왕권이 안정되자 묵자 사상은 완전히 소멸하고 묵가 집단도 없어졌음
○ 특히 맹자는 묵자의 겸애가 자기 아버지와 남의 아버지를 똑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공격했고 후에 한나라가 유교를 통치 원리로 받아들이면서 묵자의 철학이 더 지속될 수 없었음
=> 하지만 묵자를 비판했던 맹자도 공적 일에서 가족보다 앞서 백성들의 이익을 생각할 것을 강조했음

 순이 우임금에게 홍수를 다스리게 했는데 우임금이 모든 강을 소통시켜서 물길이 바다로 흘러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뒤에 백성들이 곡식을 심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우임금은 8년동안 밖에 있으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앞으로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못했다. -<<맹자>> <등문공상>

☞ 맹자를 비롯한 유가는 균형을 중시했음. 상황에 따라 공적인 일을 위해서 가족보다는 일을 중시해야 한다고 보았고 또 상황에 따라 가족을 중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공적 일과 상충될 때에는 자신이 공적 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보았음

 맹자의 제자 도응이 물었다.
 "순임금이 천자가 되었고 공정한 고요가 법관이 되었는데 순임금 아버지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할까요?"
 맹자가 말했다.
 "법대로 집행할 뿐이다."
 도응이 말했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법집행을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맹자가 말했다.
 "순임금이라도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고요의 법은 전수받은 바가 있으니, 비록 천자의 명령이라도 폐할 수가 없네.”
 도응이 말했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신짝 버리듯이 여겨서 몰래 아버지를 업고 도망가서 바닷가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즐거워하며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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