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유학: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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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필요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곤 합니다. 대화란 뭘까요? 대화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대화는 무엇을 위한 걸까요? 유학에서는 대화를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요?


대화로 시작한 유학, 공자의 문답법[편집 | 원본 편집]

  • 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의 어록이 담긴 『논어(論語)』는 제자들의 물음에 공자가 답하는 경우들이 많이 나타남. 같은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제자들에 따라 다르게 답변했음
 顏淵(안연)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克己復禮爲仁(극기복례위인)이니 一日克己復禮(일일극기복례)면 天下歸仁焉(천하귀인언)하나니 爲仁(위인)이 由己(유기)니 而由人乎哉(이유인호재)아?” 顏淵曰(안연왈) “請問其目(청문기목)하노이다.” 子曰(자왈) “非禮勿視(비례물시)하며 非禮勿聽(비례물청)하며 非禮勿言(비례물언)하며 非禮勿動(비례물동)이니라.” 顏淵(안연)이 曰(왈) “回雖不敏(회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언의)리이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는 것이니,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했다. “청컨대 그 조목을 묻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仲弓(중궁)이 問仁(문인)한대 子曰(자왈) “出門如見大賓(출문여견대빈)하며 使民如承大祭(사민여승대제)하고 己所不欲(기소불욕)을 勿施於人(물시어인)이니 在邦無怨(무방무원)하며 在家無怨(재가무원)이니라. 仲弓(중궁)이 曰(왈) 雍雖不敏(옹수불민)이나 請事斯語矣(청사사어의)리이다.”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문을 나갔을 때는 큰 손님을 본 듯이 하며, 백성에게 일을 시킬 때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하고,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고 집에 있어서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중궁이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일삼아 행하겠습니다.”
 (『논어』 「안연(顏淵)」)
 司馬牛問仁(사마우문인)한대 子曰(자왈) 仁者(인자)는 其言也訒(기언야인)이니라. 曰(왈) “其言也訒(기언야인)이면 斯謂之仁已乎(사위지인의호)잇가?” 子曰(자왈) “爲之難(위지난)하니 言之得無訒乎(언지득무인호)아?”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어진 사람[仁者(인자)]은 말을 조심한다.” “말을 조심하면 바로 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을 행하기가 어려우니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안연(顏淵)」)
 樊遲問仁(번지문인)한대 子曰(자왈) “居處恭(거처공)하며 執事敬(집사경)하며 與人忠(여인충)이니라 雖之夷狄(수지이적)이라도 不可棄也(불가기야)니라.”
 번지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거처할 적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적에 경건히 하며, 사람을 대할 적에 진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夷狄)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논어』 「헌문(憲問)」)
왜 답변이 달라질까요? 공자에게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요?


대화의 중심, 대화의 목적은 사람[편집 | 원본 편집]

 子曰(자왈) 可與言而不與之言(가여언이불여지언)이면 失人(실인)이오 不可與言而與之言(불가여언이여지언)이면 失言(실언)이니 知者(지자) 不失人(불실인)이며 亦不失言(역불실언)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함께 말할 만한데 함께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고, 함께 말할 만하지 않은데 함께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 대화도 서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함. 대화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은 강요에 불가하며 오히려 쓸데없는 실언(失言)이 됨. 또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실인(失人)으로 이어짐. 대화를 하기 전에 대화할 만큼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고 사람을 향한 것인가, 대화의 당사자 서로가 성장하기 위한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

  • 대화는 상대(사람)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공자는 상대방을 잘 알고 상대의 특징, 반응을 충분히 살피면서 상대와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화를 해나갔음


말 너머에 있는 마음 들여다보기[편집 | 원본 편집]

  • 맹자는 한 제자가 "말을 안다[知言]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는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음
  • "편벽(偏僻)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가려진 것을 알고, 방탕(放蕩)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빠져 있는 것을 알고, 부정(不正)한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도(道)에서 괴리된 것을 알며, 회피(回避)하는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이 논리(論理)가 궁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네 가지 말은 마음에서 나와서 정치(政治)에 해를 끼치며, 정치에 발로되어 일에 해를 끼치네. 성인(聖人)께서 다시 나오시더라도 반드시 내 말을 따르실 것일세.”
 何謂知言(하위지언)이니잇고 曰詖辭(왈피사) 知其所蔽(지기소폐)며 淫辭(음사)애 知其所陷(지기소함)이며 邪辭(사사)애 知其所離(지기소리)며 遁辭(둔사)에 知其所窮(지기소궁)이니 生於其心(생어기심)하야 害於其政(해어기정)이며 發於其政(발어기정)하야 害於其事(해어기사)하나니 聖人(성인)이 復起(부기)라도 必從吾言矣(필종오언의)시리라(『맹자』「공손추상(公孫丑上)」
  • 상대의 말만 고스란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저변에 깔린 그 사람의 가려진 부분, 빠져 있는 부분, 상식과 합리에서 멀어진 부분, 궁색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임.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로 드러난 생각과 마음이 일을 그르치거나 세상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는 것임


제대로 된 말,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 유학동양학을 공부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편집 | 원본 편집]

  • 유학에서 정명(正名)에 대한 고민: 공자는 바르지 않은 명칭의 폐해가 민중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이유는 바르지 않은 명칭이 사리에 맞지 않는 말로 이어지고 이것이 실제 정치적 사안에 반영되어 잘못된 정치가 횡행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임
우리는 어쩌면 서로 같은 단어는 쓰고 있지만 종종 서로 다른 전제와 개념 하에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반성적으로 사용하곤 하는, 하지만 대화의 기초가 되곤 하는 개념, 단어, 명칭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제대로 된 개념화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 행동과 실천을 전제로 하는 정명

○ 공자는 정명을 통해 이미 사용되고 있는 명칭의 본래적 의미를 밝히고자 했음. 그리고 그에 적합한 행위 실천을 요청했음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 공자는 명분과 실질의 괴리가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보았음. 명실상부(名實相符)